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싸인 Dec 22.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의식(5)

[9주차 심리학팀] 5. 무주의맹과 변화맹 

무주의맹 (inattentional blindness): 보았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


[그림 1] 보이지 않는 고릴라 [1]


 여러분은 ‘invisible gorilla’ 영상에 대해 아시나요? 심리학 실험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이것과 관련한 실험을 한번쯤 접해보셨을 겁니다. 이 실험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아직 영상을 본 적이 없는 분들은 여기에서 잠시 멈춘 뒤 invisible gorilla 영상을 보고 오신 후에 이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영상을 보기 전에 영상의 비밀에 대해 알고 나면 이로 인한 재미있는 효과가 사라질 테니까요.

 1999년, 다니엘 시몬스(Daniel Simons)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는 재미있는 실험을 한 가지 제안합니다. 참가자들에게 하나의 영상을 보여주는데, 이 영상에서는 6명의 사람이 등장하여 각각 세 명씩 흰 옷과 검은 옷을 입고 팀을 이루어 이리저리 이동하며 농구공을 같은 팀끼리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흰 옷을 입은 팀원들이 서로에게 패스를 몇 번이나 하는지 세는 과제를 부여받습니다. 실험 결과, 흥미롭게도 50% 이상의 참가자들이 영상을 보는 도중 명백하게 자신의 시야에 나타났던 ‘어떤 것’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것’은 바로 고릴라였습니다. 영상 속에서는 사람들이 공을 패스하며 이동하는 동안, 고릴라 한 마리가 걸어 나와 화면 중앙에 서서 가슴을 두드린 뒤, 화면 밖으로 유유히 사라집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흰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집중하였기 때문에 검은색인 고릴라에 주의를 주지 않았고, 지각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영상의 제목이 바로 ‘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인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시야 안에 있으면서도 주의를 주지 않은 자극이 무시되는 현상을 ‘무주의맹’ 또는 ‘지각 맹’이라고 합니다. 앞서 소개한 고릴라 실험 외에도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 작용하는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알아보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특히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자극이 어떨 때에 의식 위로 올라오는지와 관련한 단서를 제공하는 몇 가지 실험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실험은 Li, VanRullen, Koch, 그리고 Peronai의 2002년 실험입니다.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두 집단으로 나뉘어, 실험 집단은 화면 중심의 응시점에 주의를 집중해야만 풀 수 있는 시각 탐색 과제를 수행했고, 통제 집단은 그냥 응시점에 시선을 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응시점 주변에 사진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데, 이때 사진은 동물이 포함되어 있거나 포함되지 않은 자연풍경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속에 동물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자 참가자들은 주변시에 잠깐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집단 간의 유의미한 차이 없이 잘 수행해냈습니다. 반면에 주변시에 글자를 제시하거나 색깔을 제시한 뒤 구별하도록 하는 경우에 실험집단은 중심과제에 비해 주변시의 과제를 잘 수행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시각적 자극이 동일한 정도로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적 관점에서 우리의 생존에 있어 중요한 자극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비교적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림 2] [2]


[그림 3] 주변시 자극의 종류에 따른 주의 정도 [2]

 

 그렇다면 무주의 맹시는 항상 일어나는 현상일까요? 두 번째 연구는 무주의 맹시가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는 상황 알아본 연구입니다. Most, Scholl, Clifford, 그리고 Simons는 2005년 동일한 패러다임을 가진 일련의 실험으로 주의를 주지 않은 자극에 대한 의식 경험이 자극들 간에 공유하고 있는 특징,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의 세 개의 그래프는 각각의 실험의 결과들입니다. 첫 번째 그래프는 참가자들에게 각각 흰색이나 검은색에 주목하게 하고 예상치 못한 시각 자극을 제시했을 때, 이 자극의 명도가 주의를 주고 있는 자극의 명도와 비슷할수록 참가자들이 잘 알아챈다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두 번째 그래프는 참가자들에게 색깔에 주목하게 했을 시에는 같은 색을 가진 자극을 더 잘 탐지하고, 모양에 주목하게 했을 때는 같은 모양을 가진 자극을 더 잘 탐지한다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세 번째 세 실험은 한 인종의 얼굴에 주목하고 있을 때, 다른 인종의 얼굴이 나타날 때보다 같은 인종의 얼굴이 나타날 때 더 잘 인식된다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즉, 각각의 실험이 다른 방법을 사용했지만 결과는 주의를 주고 있는 시각 자극의 속성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 자극일수록 더 잘 탐지된다는 하나의 결론을 말해주고 있지요.


[그림 4] 색깔에 주목했을 때 더 잘 탐지하는 색깔 자극 [3]


[그림 5] 색깔/모양에 주목했을 때 더 잘 탐지하는 색깔/모양 자극 [3]


[그림 6] 한 인종의 얼굴에 주목하고 있을 때 더 잘 탐지하는 인종 [3]


변화맹 (change blindness): 우리는 변화를 얼마나 잘 알아차릴까?

 앞서 이야기한 무주의맹이 자극에 대한 의식 경험이 없었던 반면, 자극에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변화맹(Change blindness)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시각적 자극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앞으로 설명해드릴 실험은 변화맹에 대한 연구로서 진행된 실험 중에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실험으로 꼽힙니다. 이 실험은 실험실 안이 아닌, 실제 현실상황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지요.

 실험은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캠퍼스를 걷고 있는 20-65세 사이의 보행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자가 지도를 가지고 길을 물어보며 접근합니다. 이때 참가자와 실험자 사이를 다른 실험자가 큰 문을 들고 지나가면서 두 명의 실험자가 서로 위치를 바꿉니다. 이전과 다른 사람이 대화를 이어가지만, 결과적으로 실험자의 변화를 알아챈 참가자는 15명 중 7명으로 50%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며 상호작용을 하고 있던 상대가 갑자기 바뀐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 또한 우리의 직관에서 벗어나는 결과입니다. 

 

[그림 7]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바뀌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잘 알아차릴까요? [4]

 

 흥미로운 점은 알아챈 7명이 모두 20-30대의 참가자였다는 점입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변화를 알아챈 참가자들과 두 명의 실험자가 비슷한 연령대였기 때문에, 또래의 내집단으로서 개인적이고 세부적인 특징에 주의를 주었기 때문으로 예상했습니다. 반면, 연령대가 높은 참가자들은 젊은 실험자들을 외집단으로서 간주하고 전체적이고 추상적인 특징만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이 가설을 검증해 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실험자를 바꿔 두 번째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첫 번째 실험에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세운 연구자들의 가설을 지지하기 위해 이루어진 두 번째 실험은 첫 번째 실험에서 변화를 알아챈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의 예상대로 첫 번째 실험이 연령에 따른 사회적 내집단과 외집단의 구분이 변화를 의식하는데 영향을 주었다면, 두 번째 실험에서는 두 명의 실험자에게 건축 노동자의 옷을 입혀 참가자들이 사회적 외집단으로 인식하도록 조작했습니다. 결과는 연구자들의 예상대로였습니다. 첫 번째 실험에서 변화를 알아챘던 참가자 12명 중, 이번 실험에서는 오직 4명만이 변화를 알아챘습니다. 이는 참가자들이 건축 노동자들을 외집단으로 구분하여 빠르게 전체적인 핵심 의미만을 처리하고 세부적인 시각정보에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변화맹에 대한 이 연구는 현실 상황에서도 단순히 주의를 주고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특질들과 속성에 주목하여 기억을 저장할 때 변화를 감지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코싸인 심리학팀]


[그림 8] 사회적 외집단으로 인식했을 때 우리는 변화를 얼마나 잘 알아차릴까요? [4]


참고문헌

[1] https://www.neurosciencemarketing.com/blog/articles/the-invisible-gorilla.htm#

[2] Li, F. F., VanRullen, R., Koch, C., & Perona, P. (2002). Rapid natural scene categorization in the near absence of atten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99(14), 9596-9601.

[3] Simons, D.J. & Levin, D.T. Psychonomic Bulletin & Review (1998) 5: 644. https://doi.org/10.3758/BF03208840

[4] Most, S. B., Scholl, B. J., Clifford, E. R., & Simons, D. J. (2005). What You See Is What You Set: Sustained Inattentional Blindness and the Capture of Awareness. Psychological Review, 112(1), 217-242.

작가의 이전글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의식(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