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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평선 Dec 16. 2019

솔밭 미용실

유학생들은 머리 자르는 게 숙제.

"사감님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이른 아침 스쿨버스를 타며 학생들은 나의 건강 상태를 묻는다.

"나는 항상 좋지."

"그럼 오늘~~"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교하는 아이들과 이파이브를 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은 달려와 아양을 떤다.

"오늘 머리 안 자르면 디텐션 받는다구요."

앞머리를 눌러 눈을 덮은 채 사정하는 아이들이 마냥 귀엽다.


"의자 하나만 가져오렴"

아이들과 난 소나무가 무성한 숲 속에 미용실을 차다.

파란 카디건을 입히고 가위, 이발기, 스프레이를 준비하고 나니 완벽한 솔밭 미용실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미용실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손님과 나만의 일대일 미용실이 되어야 한다.


"오늘은 어떤 수업이 재미있었니? 누구와 제일 많이 대화를 했?"

평소에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도 솔밭 미용실에 오면 수다쟁이가 된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해서 보너스 점수를 받았다는 얘기, 외국인 친구랑 대화를 많이 해서 영어가 많이 늘었다는 얘기를 자랑삼아 쏟아 놓는다.

뿐만 아니라 평소 듣기 어려운 속마음까지 줄줄 이야기한다.

수업시간에 한국말써서 벌점 먹었다는 얘기, 프로젝트가 너무 어려워 스트레스라는 얘기, 반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이 자기를 보고 웃어주었다는 얘기를 하는 동안 덥수룩했던 머리가 예쁘게 정리가 다.

"너무 많이 자르지 마세요"

"가위 든 사람 마음이야."

"아이, 사감님. 안돼요."

"그럼 돈 내고 미용실에서 자르렴"

솔밭 미용실에선 머리 자르는 비용이 무료다. 왜냐하면 나는 자격증 없는 미용사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아들과 남편 머리를 잘라 준 20년 경력이 전부다.

그래도 유학생들은 용돈을 아끼기 위하여 솔밭 미용실을 찾아온다.

"와~마음에 들어요. 역시 사감님이 짱이에요."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내 미용 실력에는 나만의 숨은 비밀이 있다.

아이들 머리를 한 번에 많이 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이 자르면 아무리 잘 잘라도 어색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지저분한 부분만 산뜻하게 정리해주는 센스!

이것이 솔밭 미용실을 좋아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그래야 아이들은 3주 정도 뒤에 다시 비밀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된다.

오늘도 6명의 아이들이 솔밭 미용실의 번호표를 받아간다.

투블럭을 요구하는 손님과 대화하는데 어디선가 솔향기가 난다. 소나무들도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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