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푸른 시절 02화

1. 해양대학 입학시험

by 연후 할아버지

1. 해양대학 입학시험


고등학교 때, 나는 법과대학에 진학하려고 문과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입학시험을 치기 직전에 갑자기 해양대학으로 진로를 바꾸게 되어 그 학교의 입시 요강을 보니, 고졸이거나 예정인 신체 건장한 자로 되어 있으니 응시 자격에 하자는 없는데도, 시험과목에 2자가 많이 보이는 게 문제였다.


국어, 영어, 수학 2, 과학 2 네 과목을 시험 친다는데, 국어와 영어는 문과에서도 공부해서 특별히 어려울 게 없다 치더라도, 나머지 2개 과목은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막막했다.


문과에서도 같은 이름에 1자를 붙인 과목을 배우기는 하지만, 이과에서 배우는 2자 붙인 것들과는 공부하는 범위와 심화 학습의 정도가 천지 차이가 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교과서라도 훑어보고 가려고 급히 헌책방으로 달려갔더니 상황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수학 1에서는 미적분을 소개하는 정도로 끝냈는데 수학 2는 그게 거의 전부였고, 문과의 물리, 화학, 생물, 지학 책들보다 이과 교과서들은 2배 이상 두꺼워서 기부터 죽였다. (지리 역사 일반사회 등의 과목들은 과학과는 정반대였지만, 해양대학 입시 과목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당황스러워서 기출문제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다른 서점들도 모두 뒤지고 다녔는데, 다른 대학 것은 간혹 보였지만, 그 대학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떤 서점주인 말로는 자기 조카가 그곳 학생인데 해마다 전혀 다른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기출문제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더란다.


내가 보려던 것은 문제가 아니라 출제 경향과 범위였으니 서로 초점이 약간 어긋나기는 했지만, 다른 대학들의 기출문제라도 몇 개 풀어 보면 참고가 되겠다 싶어 있는 대로 사서 들고 돌아왔다.


예상했던 대로 국어와 영어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수학과 과학은 문과에서 배우지 않은 범위를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손도 댈 수 없다는 걸 확인했는데, 이런 상태로 원서를 쓰는 게 과연 맞는 일인가부터 망설여졌다.


더구나, 당시는 우리나라가 몹시 가난하던 때이기도 하였지만, 해양대학은 학비가 무료에 가까웠고 입학시험도 특차로 일반 대학들보다 먼저 쳤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수재들이 모두 모여들어 합격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입시 지도 선생님들과 상의를 했더니, 막판에 쓸데없는 일에 힘 빼지 말고 목표로 하던 대학의 입시에나 전념하라는 게 한결같은 조언이었지만, 나는 양쪽 다 합격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며 일단 지원서를 써서 제출했다.


벼락공부를 시도해 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과 과목들은 암기보다는 이해력을 요구하는 내용들이 많아서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가는 건 머리에 남는 게 거의 없었던 것이다.


또한, 나는 이번 시험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1차와 2차는 문과 시험을 쳐야 하는데, 이러다가 가재도 게도 모두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까 봐 불안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원서를 넣었으니 거기서 물러나거나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학과 공부는 어떻게 발버둥 쳐본다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여전히 남았다. 신체검사를 먼저 해서 그 합격자에게만 필기시험을 치를 자격과 기회를 준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겉보기론 대충 건강해서 이상 없을 것 같긴 했는데, 다른 응시생들처럼 미리 검사를 받아 보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지만,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았고 시간도 부족해서 운에 맡기고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신체검사 하는 날이 닥쳐 검시장으로 나갔더니, 항해학과 기관학과를 합해서 200명을 모집한다는데 첫날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만 해도 수천 명은 될 것 같았다.


사흘을 더 검사를 해야 하는데, 본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서울, 대전, 광주 등의 도시에도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 괜한 고집을 부렸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앞 번호 수험생이 이상한 약을 먹기에, 무슨 약이냐고 물었더니 혈압 약이라며 그게 지나치게 높거나 낮으면 통과할 수 없어서 조절하는 중이란다.


아버지도 형님도 고혈압 처방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갑자기 불안해졌다. 검사의 진척 속도로 봐서는 내 번호가 호명될 때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 이상은 남은 듯했다.


나는 대열에서 이탈해 급히 택시까지 타고 인근에 있는 약국으로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그 약을 샀고, 한 알만 먹으라는 걸 네 알이나 먹었다. 속이 타고 불안했기 때문이다.


내 차례가 되어 검사장으로 들어갔더니 키와 몸무게를 잰 후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그중에는 혈압 측정도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고혈압이 아니라 저혈압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와서 다시 재라고 했는데, 그래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군의관이 내 검사지에 붉은 글씨로 뭐라고 한참을 적더니 끝났다고 나가란다.


밖으로 나와서 생각하니 불합격된 게 틀림없었다. 내 것과 같이 붉은 글씨를 쓴 몇 장의 검사지만 따로 모아 두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다시 불러서 재검사를 할 사람들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마산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 것 같고, 이런 기분으로 친척집으로 가서 신세를 지는 것도 싫어서, 밥도 굶고 가까운 여관을 찾아들어 가 누웠지만, 낮에 바보짓을 했던 게 분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겠지만, 그걸 믿어 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올 때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왔지만 막상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되면 내 인생 전체가 꼬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다음날 아침 검사받던 곳으로 다시 나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수험생들은 많았고 검사장은 붐비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혈압을 다시 재 달라고 떼를 써 봤지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다. (요즘처럼 자동 측정기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에는 수동으로 재는 게 전부였다.)


밖으로 쫓겨 나와 운동장 귀퉁이에 앉아 있는데, 그때까지의 노력이 허망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운동장에 몰려다니며 공을 차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신분을 물어보니 대부분이 그 대학 교수님들 자제들이라 했다.


어쩌면 방법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중에 한 아이가 대학원장님 아들이라기에 그에게 사정을 얘기하며 도움을 청했는데, 찬찬히 듣던 그가 자기를 따라오라더니 집으로 데리고 가서 자기 엄마에게 내 사정을 전달했다. (당시에 나는 대학원장이 학장보다 높은 직위인 줄 알고 있었던 촌놈이었다, 그래서 그 집으로 갔던 것이다.)


아이 말을 듣고 난 그 부인이 나에게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최대한으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했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나더러 학군단장님을 찾아가 보라고 하셨다.


물어 가며 그분 방을 찾아갔더니 해군 제복을 입고 대령 계급장을 단 군인이 앉아 계셨다. 대뜸 ‘원장 사모님과는 어떤 관계?’ 하고 묻기에 얼떨결에 ‘저희 아주머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거짓말은 하지 않은 명답이었다.


그분이 또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고 나서 장교 한 명을 부르더니 지시했다.

“대학원장 사모님 조칸데, 신체검사가 잘못되었다고 재검사를 해 달란다. 군의관에게 데려가 봐라”


그 장교를 따라갔더니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혈압을 다시 재지도 않았는데, 군의관은 내 검사지를 찾아서 붉은 글씨들을 지워 버렸고, 며칠 후 내 수험 번호와 이름은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필기시험을 쳤는데, 그 해에는 내가 잘하는 국어나 영어는 어렵게 나왔고 수학 과학 등 이과 과목은 쉽게 출제되어, 좋은 성적으로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 합격이 내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집어삼키고 말았지만, 당시에는 운수대통 했다고 어깨춤을 췄고, 다른 대학에 원서를 제출할 생각마저도 잊어버렸다. (시험을 치려면 문과 과목들을 다시 봐야 하는데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keyword
이전 01화머리말. 내 아들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