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이돌 가수들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아 K-Pop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겼다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할 때는 신기하니까 관심을 보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와 드라마가 국제무대에서 호평을 받고 널리 알려져 세계적으로서 유명한 상을 받고 시상대에 올랐다는 소식이 얀이어 들리고, 이제는 화장품과 한국 음식들이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니 오래 살다 보니 듣고 보는 호사다.
그래도 나는 국내 일부 언론들의 아전인수 격의 해석과 수저만 얹어 치적을 자랑하고 싶은 정부의 부풀린 선전이 아닌지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가끔 외국 항구에서 상륙을 해보면 ‘상전이 벽해’가 된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거리에는 한국 자동차가 줄을 이어 질주하고, 백화점에 들러 보면 한국산 가전제품들이 입구나 중심부에 진열되어 있으며, 어느 나라 호텔에서도 한류 드라마를 방영하고, 곳곳에서 K-pop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로제의 ‘아파트“란 노래가 뜬다더니 한국보다 먼저 동남아 길거리에서 울려 나온다.)
몇 년 전, 영국 선주의 배에 승선해 있을 때, 공무 감독이 인도 사람이었다. 마침 그 배가 인도의 뭄바이 항에 기항했는데, 방선하겠다는 연락을 그에게서 받았다.
특별한 일도 없는데 뭣 때문일까 싶어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입항을 하자마자 그가 왔다. 전화로 듣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젊은 사람이었다. 그와 동행한 소녀가 있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한국어로 인사를 해서 깜짝 놀랐다.
목소리도 청아하고 발음이 아주 분명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국어를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어를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어봤더니 BTS(방탄소년단)와 한국 드라마 얘기를 한다. 그게 자신의 한국어 선생님이었단다. 그러면서 그녀는 한국에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인데, 만약에 가면 BTS 서명을 받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들이 누군지도 잘 모른단다.”
아무튼, 세계는 지금 한국 문화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또한, 반도체, 가전, 원자력발전, 방위산업, 조선 등 많은 산업이 동시에 호항이라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는 게 정부나 언론의 설명이다.
이렇게 모든 게 잘 돌아가니 국내 정치나 경제 사정도 안정되고 잘 굴러가겠거니 기대를 하고 귀국해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웃음소리는 곳간에서 나온다는데, 이건 정말 의외의 일이다.
경제 상황이 비교적 양호하다는 우리나라가 이럴진대, 정말로 어려운 나라 백성들은 모두 어떻게 살까? IT의 발달로 인간들의 일자리를 컴퓨터나 로봇이 모두 뺏어가 버리는 시대의 흐름 때문은 아닐까? 만약에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텐데 우리 저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꼬리를 물고 춤을 춘다.
이렇게 답답할 때는 욕이라도 한바탕 시원하게 뱉고 나면 속이 좀 풀릴 텐데, 한국어가 세계화되면서 그 또한 조심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인터넷에 무심코 ‘되놈’이나 ‘쪽발이’라는 댓글이라도 달면 금방 목숨의 위협을 느껴야 한단다.
일본의 <후쿠오카>나 중국 공항들에 가보면 면세품 가게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의 대부분이 나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명찰의 성씨를 보면 교포들의 자녀들이라고 보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난번 휴가 중에, 본선에서 회사로 온 보고서들을 챙겨 보다가 깜짝 놀랄 투서를 한 장 봤다. 평소에 나도 잘 아는 인도네시아 출신 1항사로부터 온 것이었는데, 선장이 자신에게 했던 욕설을 종류별로 구체적으로 분류해 매일 일지를 써서 보냈던 것이다.
이처럼 요즘에는 한국어를 이해하면서도 선택적 표시만 하는 동남아 선원들도 간혹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나는 비교적 나쁜 말을 입에 담지 않는 편이지만, 그것을 하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때는 아무도 듣지 못하는 곳으로 장소를 옮겨 혼자 하려고 노력한다.
19세기 중반, 방랑시인 김삿갓이 산골 훈장을 놀리던 유명한 시 한수가 생각난다. 손님 접대를 않는 훈장을 꾸짖는 점잖은 글귀인 줄 알았는데 자꾸 읽다 보니 그 속에 온갖 욕설이 다 들어 있었다.
상상력이 부족한 내가 정확하게 그 뜻을 알아차리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이런 고차원적인 풍류를 지녔고 표현했던 천재 시인의 감각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우리 욕을 이렇게 즐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당은 일찍부터 알고 있던 그곳인데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방안에는 귀한 분들만 모여 있네.(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생도는 모두 열 명도 안 되는데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선생은 나와서 인사도 않는구나.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