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은행원의 은행 걱정기
나는 대한민국의 은행원이다. 4대 주요은행 중 1곳에서 근무한지 이제 만 7년이 되었다. 책임자로 승진할 시기가 되어 여기저기서 승진 언제 하냐는 물음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지만 나는, 승진할 생각이 없다. 아니, 승진이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지금 같은 회사의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승진은 직장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다. 승진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아주 많이 매우 크게 very much 갈린다. 욕심이 크게 없던 나였지만, 직장에 들어왔으니 승진은 나에게도 당연히 해내야 할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런 내가 왜 승진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을까?
한때 우리 직장은 '강한 조직문화'를 토대로, 진정성 있는 영업과 고객관리를 통해 후발주자였던 본사를 국내 1,2위를 다투는 은행으로 성장시킨 저력있는 곳이었다. 물론 현재도 잘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 위상이 과연 얼마나 갈지는 조금 의문이다. 업종의 특성상 쉽게 망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처럼 급변하는 시장상황에서는 어떤 *블랙스완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다.
(*블랙스완 : 일어날 것이라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뜻하는 말. 검은 백조는 없을 것이라고 했으나 실제로 발견됨)
카*오뱅크, 케*뱅크, To*s 등 인터넷은행, 핀테크업체들이 점점 성장하면서 기존의 시장을 잠식하며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던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들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기존의 거대업체들에 비하면 유연한 조직문화를 갖고 빠른 의사결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내고 있을 거라 예상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함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 환경을 바꾸고 직원들을 독려해야 하지 않을까? 맞는 말이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우리의 업무환경을 한번 돌아보자.
은행의 주요업무 (영업점 위주)
1. 고객응대 (CS)
2. 재무상담 및 설계
3. 대출상담 및 실행
4. 대출 사후관리 및 리스크 관리
5. 금융상품 판매 (예금, 적금, 카드, 펀드, 보험, 신탁, 외화, 금, 은, 파생상품 등)
6. 공공서비스 (공과금, 법원업무, 각종 경제시책에 따른 신상품 홍보 및 실행)
7. 고객관리 (상품 판매 후 거래 유지 및 확대를 위함)
8. 경비 지출, 관리 등 회계 업무
9. 외부 섭외 (지점에 방문하는 고객 감소로 인해, 방문 섭외를 통한 영업 병행)
10. 그밖의 업무역량 개발을 위한 공부, 자격증 취득, 어디서나 있는 잡다한 업무 등
...
하나의 지점(영업점)에서 실시하는 업무들을 나열해보자면 위와 같다. 세부적으로 하면 더 나오겠지만 생략하고, 위처럼 10가지만 해도 업무강도가 꽤 강해보이지 않는가?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실제로 다들 버거워한다. 물론 저 업무를 잘 분업해서 실시한다면 영업이익을 내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이니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저 일들을 한명의 직원이 거의 다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업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우리 회사의 동료들은 정말 몸이 하나로는 모자라 보일 정도이다. 오죽했으면 '신이 하는 일을 한 사람이 한다' 라는 웃픈 별명까지 생겼을까 싶다.
물론 고객의 입장에서 이쪽 창구에서 요거 상담받고, 저쪽 창구로 옮겨가서 저거 상담받고 하는 불편함을 생각해서 <혁신적>인 방식으로 한 창구에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해드리는 서비스를 시작한 우리 회사의 아이디어가 있었기에 시장 진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이 바뀌고 있고, 사람들의 인식 또한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더이상 바보가 아니다. 인터넷에서 웬만큼만 발품, 아니 손(가락)품만 팔면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을 상당량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웬만한 고객이 은행 직원보다 금융지식이 많은 경우도 생긴다. 은행원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지금처럼 계속해서 한 사람의 원맨쇼를 기대하는 방식으로 창구를 운영한다면 전문성은 계속해서 떨어질 것은 자명하다. 결국, 창구의 분업화 = 전문성 강화 = 일의 성과 증대 = 고객만족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힘빠지게도 이런 일은 당분간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분업화가 일어난다면, 그건 다수의 직원을 희망퇴직 등을 통해 줄인 뒤 소수의 기능화된 점포들만 운영할 경우에 적용될 것이라 본다. 실제로 은행 내부에서도 계속 그런 움직임을 유도하고 있다. 어찌 됐든, 우리의 힘(CEO가 아닌 말단직원에서부터 중간관리자급까지)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아니기에 넘어가기로 한다.
그럼, 무얼 해결하고 싶은 건가?
큰 틀, 즉 환경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한다. 이게 또 무슨 힘빠지는 소리냐고? 힘빠져도 어쩔 수 없다. 원래 남을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냥 나를 바꾸는 게 가장 속편하고 쉬운 일이다. 아, 물론 상대적으로 쉽다는 거지 누워서 떡먹기 수준은 절대 아니니 오해말자.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하는 즐거움 말이다. 아니, 좀전까지 환경 개선도 어렵고, 업무 강도는 빡세서 어떡하냐고 그러더니 즐거움 타령을 해? 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의 행복감, 성취도도 올라갈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20년간 글로벌 기업들의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고 성과를 이끌어냈던 두 학자가 써낸 책,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에 나오는 말이다.
책을 쓴 두 사람은 수많은 기업들의 사례를 연구한 끝에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는 이유나 동기 요인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성과를 이끌어내는 데에 결정적 역할(+ 효과)을 하는 직접동기 3가지와 반대로 성과에 악영향을 미치는(- 효과) 간접동기 3가지를 도표를 통해 알려준다.
좀 생소해보일 수 있어, 하나씩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성과에 좋은 영향을 주는 직접동기 3가지>
1. 즐거움
: 일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 = 일 자체가 보상. 휴식시간에 게임할때, 수다 떨 때 느끼는 재미와는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은 놀 때가 아니라 일할 때 느끼는 즐거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직접적인 동기면서 높은 성과를 이끄는 데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2. 의미
: 일 자체를 좋아하진 않더라도, 그 일을 함으로써 생기는 결과(영향력)를 중요하게 여긴다. 예를 들면, 진료행위 자체를 좋아하진 않지만, 치료함으로써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게 되면 기뻐하는 의사나 간호사는 일의 의미를 느끼는 것이다. 일 자체보다는 결과에서 생기는 동기라서, 1순위 즐거움보다는 영향력이 낮다.
3. 성장
: 일 자체가 즐겁지도 않고, 그에 따른 결과물 자체도 큰 의미는 없지만 그로 인해 내가 발전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낀다. 예를 들면, 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게 재밌지도 않고, 고객에게 재무상담을 해주고 그에게 금전적 이득을 제공하는 것 자체에도 의미 부여가 안되지만, 상담과 판매 과정에서 판매스킬과 노하우를 습득하여 더 큰 목표인 재무 컨설턴트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면,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이는 즐거움, 의미보다는 영향력이 약하지만, 업무성과에는 도움이 된다.
<성과에 악영향을 주는 간접동기 3가지>
1. 정서적 압박감
: 실망, 죄의식, 수치심 등의 감정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나타난다. 일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하거나,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남들이 부러워할만 한 일을 하는 것이 그 예시이다. 이것이 가장 약한 간접동기이다. 그렇다면, 더 악한 간접동기는?
2. 경제적 압박감
: 보상을 받을 목적이나 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일을 할 때 발생한다. 꼭 돈과 관련된 보상이 아니어도 이에 해당한다. 무언가를 받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은 일 자체에 재미를 느낀 사람에 비해 성과가 적다고 한다.
3. 타성
: 가장 간접적인 동기이자 가장 성과에 악영향을 끼치는 동기이다. 일 자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그냥 그제도 했고, 어제도 했던 일이라 오늘도 할 뿐인 경우다. 죽지 못해 출근한다, 같은 전형적인 우리네 모습이 반영돼있는 듯 하다.
이렇게 6가지 동기를 살펴보았다. 앞서 말한 직접동기 3가지가 많고 뒤에 말한 간접동기 3가지가 적을수록 총 동기는 높아진다. 이 총 동기가 곧 최고의 성과를 내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준다. 이제 내가 왜 즐거움이 중요하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가는가?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나도 즐거움을 느끼면서 일을 해보고 싶다. 바꿀 수 있을까? 나 혼자서는 힘들겠지만, 내 중간보스인 지점장님이 이 내용을 이해하시고 직접 주도하신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점장님은 어떻게 하면 이 총 동기 지수의 필요성을 느끼고 적용할 수 있을까?
먼저, 우리의 직장에서 이 '총 동기 이론'을 적용할 수 있을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조직은 크게 세 가지를 추구한다. 고객만족, 영업이익 상승, 리스크 관리. 너무 당연한 건가? 한번 뜯어보자.
1. 고객만족
: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적절한 대화를 통해 고객의 현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그 후 적합한 상품과 대안을 추천한다. 설득의 과정을 거쳐 고객에게 상품 판매를 하고 사후관리까지 지속한다. 고객관리를 통해 거래 유지 또는 확대를 추구한다.
->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역량이 필요하다. 우선 고객맞이부터 밝은 미소로 대한다. 닫혀있는 고객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심리를 이용한 오프너 화법을 구사한다. 잘 경청하여 니즈를 캐치하고, 미리 공부해둔 상품 중 적절한 걸 빠른 시간 내에 골라 추천해드린다. 고객의 반응을 잘 살피면서 상담을 진행하고, 가입 결정시 빠르게 전산처리를 완료한다. 감사인사는 기본, 추후 수익률까지 챙기는 고객관리를 실시한다.
위에서 말한 능력 외에도 '상담하면서 걸려오는 전화를 고객이 기분나쁘지 않게 받아 처리하기', '기다리는 손님들 눈치를 잘 살펴 화내거나 CS평가에서 나쁜 평가를 주지 않도록 적절히 응대하기', '고객에게 분명 이득이 가는 상품인데 이해를 못하시는 분을 계속해서 설득하기' 등등 많은 능력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저걸 다 해야 은행에서 추구하는 고객만족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음... 쉽지 않다.
2. 영업이익 상승
: 갈수록 치열해지는 금융업계의 경쟁으로 인해 수수료 등의 비용으로 얻는 이익이 많이 줄어드는 현실이다. 그래서 은행들은 비이자수익의 증대에 혈안이 되어있다(아니라고? KPI와 각종 프로모션을 보고도 그런 말은 못할 것임). 저금리 시대다 보니 전통시장인 예적금은 뒷전이고 판매시 수익이 높은 투자상품 위주로 직원들을 교육하고 판매에 대한 보상을 강조한다.
->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역량도 중요하지만, 현재 KPI 제도 하에서는 최대한 빠르게, 많이, 큰 액수로 상품을 팔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역량 쌓기에 시간을 투자할 여건이 안된다. 한번 창구에 앉은 손님을 최대한 설득해서(라고 쓰고 꼬드겨서 라고 읽는다)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많은 금액으로 가입하게 해야 한다. 고로, 빠른 시간 내에 고객을 설득할 수 있는 화법과 상품지식이 필요하다.
3. 리스크 관리
: 돈을 다루는 회사기 때문에 더욱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 수많은 상품을 판매하고, 대출을 실행하면서도 상품의 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리스크, 대출이 부실날 것에 대한 리스크 관리 또한 동시에 해줘야 한다. 당연히 은행의 입장에서는 일이 많아질수록 리스크 노출도 심해질 것이다. 영업이익 상승도 추구하면서 리스크 관리까지 하는 것은 모든 회사의 숙명이지만, 이 둘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 실제로 창구에서는 1,2,3번을 모두 챙겨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데 <빠르게 고객 응대를 하면서 친절함을 잃지 말아야 하고, 다양한 고객들의 개개인 특성을 빠르게 캐치하여 고객에게 이득이 되면서도 은행의 수익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추천하면서, 중간중간에 껴드는 전화와 대기하는 손님들의 마음을 달래줌과 동시에,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까지 분석해서 결론을 내리고 고객의 업무처리를 마친다. 그리고 틈틈이 기존 고객들의 사후관리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다.>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좀 한가한 지점은 여유있게 상담을 진행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바쁜 점포에 가면 정말 숨을 허덕이며 일을 하는 직원들의 어두운 표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 이런 환경에 우리는 놓여있다. 어떤가? 과연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우선, 기존에 사용하던 '직원들의 성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는 방식'부터 고쳐나가야 한다고 본다.이를 <스택랭킹 제도>라고도 하는데 세계 굴지의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이 제도를 도입했다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이는 전형적인 간접동기 유발 제도였다. 속된 말로, '암 유발' 제도이다. 도입 초기에는 타당해보이기도 했다. 능력을 최우선하는 제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즐거움, 의미와 같은 긍정적인 동기를 정서적 압박감, 경제적 압박감처럼 부정적인 동기로 바꿔버렸다. 즉, 총 동기가 떨어진 것이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현상이 몇가지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1. 주의분산효과
: MS 직원들은 상품 중심이 아닌 인사고과를 중심으로 자신의 하루를, 그리고 1년을 계획했다고 한다.
결국, 상품의 질 개선보다는 상품 판매량 증대를 통해 고과를 잘 받기 위해 일을 했다는 것이다.
-> 은행도 이런 주의분산효과가 있다. 1달마다 실적 우수직원을 성적순으로 뽑는데, 딱 이런 식이다. 모든 종류의 상품을 골고루 일정량 이상 판매해야 하는데 결국 모든 손님에게 여러가지 상품을 판매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많은 집중력이 소모가 된다. 물론 역량 개발이 충분히 돼있고 습관이 된 직원들은 꾸준히 우수직원으로 뽑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다수는 환경의 덕(운)을 보는 경우도 많다. 정량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직원들 각자의 영업환경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다.
2. 의도상실효과
: 기업의 이익이 아닌 6개월간의 성과가 훨씬 중요해졌다고 한다.
회사 전체의 나아갈 방향을 보고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 목표만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 은행은 보통 상/하반기 6개월단위로 지점 평가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2~3개월 단위의 대규모 캠페인을 벌인 뒤, 그 결과를 6개월 평가에 큰 비중으로 포함시킨다. 결국, 3개월 단위의 실적 평가가 1년 평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회사의 목표 중 영업이익 실현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고객만족 측면에서는 미지수다. 단기 수익을 좇게 되면 자연스럽게 고객 가치를 생각하는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래의 의도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3. 코브라효과
: 코브라효과는 설명을 좀 더 자세히 해보겠다. 1800년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인도에서 영국 정부가 코브라 시체에 포상금을 걸었다. 델리에 코브라 수가 너무 많아서였다. 처음에는 의도대로 코브라 수도 줄고, 공포감도 줄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일부 사업가들이 죽은 코브라 시체로 돈을 벌겠다고 맘먹고 코브라 농장을 차린 것이다. 뒤늦게 알아챈 영국 정부가 포상 제도를 없애자 코브라 시체의 가격은 폭락했고 쓸모없어진 코브라를 다 방생하자 결론적으로 코브라의 숫자는 전보다 훨씬 늘어나버렸다.... The end... 가 아니고.
이처럼 잘못된 포상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총 동기 지수가 너무 낮아져 버린다. 그럼 사람들은 이 압박감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편법을 쓰게 된다. MS의 직원들은 자신의 순위가 낮아지는 게 두려워 잘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심지어 또 다른 기업에서는 인사고과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저성과자들을 이동하지 못하게 해서 고성과자들의 순위를 유지시켜줬다고 한다. 이게 무슨...
-> 은행에 대입하자면, 속된 말로 실적 나래비를 세운 뒤 잘하는 직원은 포상, 못하는 직원은 망신 또는 질책을 주는 경우가 다수이다. 그렇게 되면 포상은 못받더라도 질책받지 않기 위해 불완전판매나 지인판매 등의 편법을 쓰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도 무수히 많은 불완전판매(는 그나마 많이 줄긴 했다)와 지인판매가 자행되고 있다. 눈가리고 아웅 하고 있을 뿐... 후... 실제 책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코브라 효과는 조직 내에서 놀랄 만큼 흔히 발생한다." (p85) 음, 선진국도 어쩔 수 없구나? 라며 위안을 삼아본다.
이런 성과제도가 잘못 되었다는 걸 반증하는 증언들이 있었다. 바로 상위 10% 이내의 고성과자들이다. 그들은 팀 동료들이 공정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실제로 팀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그 중 저성과자로 분류된 직원은 불이익을 당했다고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구글의 래리 페이지,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한 팀이라면 성과와 상관없이 두 명은 성과 순위에서 평균 이하로 평가된다. 게다가 그 중 한 명은 팀 내 가장 형편없는 직원으로 간주될 것이다. (p.354,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
잘못된 성과관리 제도의 단점으로 한가지만 더 언급하자면,'운'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이 부분이 정말 내가 많이 느낀 부분이다. 어떤 날은 상품 가입에 호의적, 적극적인 고객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런 날에 다른 업무가 바쁘지 않아 손님을 많이 받은 사람은 단기적으로 실적이 팍 오른다. 하지만 티는 안나는 다른 중요한 일에 매달려있던 직원은 하루종일 실적한 게 없어 상사에게 지적을 받는다. 이런 일 또한 자주 일어난다. 물론 운이 다는 아니다. 그만큼 본인이 노력해서 빨리 많은 손님을 응대하고 상품을 판매하려는 훌륭한 직원들도 많다. 운에 자주 노출되는 것도 본인의 노력에 달려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이런 부분적인 실적들을 보고 부진한 사람들을 안좋게 평가하는 '과실 편향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실제 역량은 비슷한데도, 운이 조금 따라줘서 실적을 낸 직원에겐 과한 칭찬을, 실적을 내지 못한 직원에겐 질책을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실제로 많이 벌어진다. 쓰다 보니, 정말 고칠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아, 물론 이 서평도 너덜너덜해서 고칠 부분이 많을 것이다.
앞서, 나는 나의 직속 상사이자 중간관리자인 지점장님이 어떻게 하면 총 동기 지수에 대해 이해하고 적용할 마음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고 있다. 뒤이은 글에서는 이 책에 나온 사례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 제시하여 실질적으로 우리 지점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해보겠다. 되도록 지점장님께 바로 보여드릴 수 있는 편지 형식으로 써보고자 한다. 매번 서평을 쓸 때마다 느끼지만, 글쓰기는 정말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다.
세계 최고 기업들의 조직문화에서 찾은 고성과의 비밀을 담은,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를 읽고 느낀 첫번째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