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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Dec 14. 2020

이 죽일 놈의 변덕

뜬금없는 자기고백, 그리고 반성


 어렸을 적 나는 어머니한테 많이 혼났다. 사고를 자주 쳐서가 아니라, 변덕이 심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모범생이었던 형에 비해 나는 다치기도 자주 다쳤고, 약간의 일탈도 하면서 부모님의 애간장을 닳게 했던 존재였다.


 '청개구리'는 나를 잘 표현해주는 단어였다. 나 스스로가 그렇게 인정하진 않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자주 말씀하셨다. 실제로 나는 시키는 일은 더욱 하기 싫어했고 지금도 사실 그렇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청개구리의 피(?)가 조금씩은 흐르고 있다고 믿기에 내가 이상하다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성향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질 때도 많고 스스로 자책하는 경우도 많다. 알아서 미리 잘 하면 좋으련만, 왜 그리 할일을 미루고 변덕은 죽끓듯 하는 것일까? (공감하신다면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찡긋)



 앞서 말한 내 단점은 내가 <베스트 셀프 Best Self>라는 책을 읽으면서 되돌아본 나의 '반자아(Anti-self)'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내가 그린 반자아(Anti-self). 이름은 '어글리 인사이드'. 정말 흉측하다..


 반자아란, 삶의 여정을 스스로 즐기지 못하게 방해하는 존재로, '나는 나의 이런 면이 싫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총망라한 존재라고 보면 된다. 책에는 거의 200개에 가까운 부정적 의미의 단어를 나열해놓고, 그중에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을 고르게끔 한다. 물론 주어진 목록에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단점(?)도 스스로 적어본다. 그 작업이 끝나고 나면 이 특성들을 바탕으로 나의 반자아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상상력을 더해 캐릭터를 창조할 수도 있고,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를 표현해도 좋다. 그렇게 구체화 시킨 것이 바로 위에 있는 그림이다. 정말 흉측하기 그지없다. 그림 실력이 좋았다면 더 흉측하게 그릴 수도 있었는데, 뭔가 아쉽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는 매우 특이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자고 일어나면 외모(키, 머리색, 인종, 심지어 성별까지)가 바뀌는 신비한 특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 특성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주인공은 원래 남성)와 정상적인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이별하게 되는, 슬픈 이야기다. 외모는 매일 바뀌었지만, 그가 가진 능력(가구 디자이너)과 성격, 성향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그일지라도 사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반자아는 어떤가? 외모는 흉측한 그대로인데 내면은 수시로 바뀐다. 차라리 외모라도 좀 바뀌었으면 기대하는 재미라도 있을텐데 말이다.


 책에서는 이런 식으로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장치(질문에 답하기, 그림 그리기, 점수 매기기 등)들을 제시하여 매우 능동적인 독서를 이끈다. 그러다 보니 진도가 잘 안나간다는 단점이 있지만,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게 하루 몇시간 투자해서 책 한 권 뚝딱 읽는다고 끝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책 읽다가 또 변덕 부리지 말고, 끝까지 읽어야겠다. (이 글을 처음 쓰는 시점이 책 구매한지 2주 되는 시점인데 절반밖에 못읽었다. 평소보다 진도가 안 나가는 중)(이 글을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시점은 1년이 지난 시점이다. 겨우 다 읽고 두번째 서평을 썼다. 후속으로 올릴 예정)



 최고의 자아(Best-self)도 그려보았다. 이는 내가 가진 모든 긍정적인 특성을 끌어모아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꽤나 재미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려본 자아들을 보고 난 뒤라 그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뒤죽박죽 만들어놓긴 했지만, 이내 정신을 집중하고 그리다 보니, 나름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찾을 수 있었다.


나의 최고자아(Best-self). 왼쪽은 내가 그렸고, 오른쪽은 와이프가 그려줬다.


 이름하여 '빡독 산타'. 남을 돕는 것을 즐기는 산타의 성향을 벤치마킹한 캐릭터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게 된 독서, 지향점이 된 이기적 이타주의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투영하여 만들어보았다. 내가 그린 그림은 참 조악하지만, 아내가 그려준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봐도 뭔가 흐뭇해진다. 후후..




 이 책의 저자인 코치 마이크(마이크 베이어. 유명 예술가, 운동선수, 경영자 등 의뢰인들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코칭을 제공하는 사람)는 말한다. 

최고의 자아와 반자아를 찾았다면,
나의 반자아가 얼굴을 치켜들려고 할 때,
최고의 자아에게 반자아를 처리하게 하라. 


 처음엔 힘들겠지만 반복해서 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 무의식적으로 최고의 자아를 출동시켜 반자아 빌런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코치 마이크는 이런 반자아를 무조건적으로 없애야 하는 암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하기 보단, 삶이 고정돼있지 않고 계속 변하는 것처럼 반자아도 계속 변하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되짚어보며 반자아에 대처하는 연습을 새롭게 하자고 말한다. 또한 삶에서 이직과 전직, 이주(이사),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등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경험할 때가 반자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라고 한다. 이것이 삶에서 전반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지 1년이 넘었는데, 그 동안에도 내 속에서 반자아가 불쑥 튀어나온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직 최고의 자아를 발동시켜 반자아를 억누르는 데엔 익숙지 않다. 좀 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당연하겠지만, 최고의 자아와 반자아를 찾는 작업을 했다고 해서 자아실현이 된다거나 삶의 변화가 극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코치 마이크가 괜히 코치는 아닐 것이다. 그는 변화하기 위한 다섯 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호기심 Curiosity


2. 정직함 Honesty


3. 열린 마음 Openness


4. 의욕 Willingness


5. 집중 Focus



1. 호기심은 사실 나에게 매우 애매한 존재이다. 어떤 때는 호기심이 왕성하다가도, 어떤 때는 의욕이 사라져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호기심'이 가져다주는 성과는 매우 크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호기심이 곧 성공의 씨앗인 경우가 많기에 나 스스로도 호기심을 갖고, 매사에 탐구하고 질문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나의 반자아는 그런 마음을 자꾸 앗아간다. 후... 


어쨌든, 호기심이 없으면 배울 수가 없으니 꼭 가져야 한다. 사실 이 책도 호기심이 없었으면 진작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희망을 갖자!



2. 정직함은 내 최고의 자아 '빡독 산타'의 추구 모델이기도 하다. 이 책의 판권을 구입한 신영준 박사가 입에 달고 사는 개념인 '안티프래질(충격에 강한)'도 이 정직함이 없이는 성립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거짓은 언젠가 들통나게 돼있고, 고백의 결과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고 한다. 진실성이 없이는 최고의 자아에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3. 열린 마음은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다른 요소를 다 갖췄다 한들, 편견을 갖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나온다.


유일하게 진실한 지혜는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슬프지만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걸 인정하지 못한다면 배울 수가 없다. 이걸 인정했다고 해서,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야, 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세상은 계속 변하고 우리가 아는 지식들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구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계속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비워야 채워진다'라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4. 의욕은 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실천하는 것만이 답이긴 하지만, 그 의욕을 지속하는 것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내 반자아는 내 귓가에 속삭인다. "야... 그냥 쉽게 살아... 먹고 살만 하잖냐..."

후... 그 입 다물라, 어글리 인사이드.


내 결론은 이거다. 그냥 하자.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지금 이 글처럼. 



5. 집중도 사실 어렵다. 자꾸 반자아랑 변화의 필수 요소들이 겹치는 것이, '이래서 내가 변화하기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집중력이 약해서 산만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 나는 지금도 집중력이 약해 애를 먹는다. 그래서 멀티태스킹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약한 집중력이 더 분산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멀티태스킹 능력치를 거의 최대치로 발휘해야 해서 정말 에너지 소모가 크다. 아, 직장얘기로 새면 끝도 없으니 여기까지만.. (또 집중력 잃을 뻔)


 책에서도 나오지만, 집중력을 극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만의 환경설정 법을 찾는 것이다. 정말이지, 주변환경을 나에게 맞추는 것만큼 집중력을 키워주는 것은 없는 듯 하다. 휴대폰 끄기(비행기모드), 특정장소에서 OO하기, 특정시간대에 OO하기, 난이도를 낮추기 등 나만의 방법을 연구하고 시도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난 주로 늦은 밤에 집중이 잘되는데, 작업을 하고 나면 늦잠을 자게 된다는 단점이 크지만, 아직까지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새벽에 무언가를 하는 것이 훨씬 집중이 잘됐다. <When, 언제 할 것인가>를 읽고 테스트 해봤을 때 올빼미형이 안나와서 의아했는데, 역시 난 올빼미형이 맞는 것 같다. (내 테스트 방식이 뭔가 잘못됐던 걸지도)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자아 실현이란 건 참 어려운 거구나, 하지만 참 즐겁구나 라는 것이었다. 이토록 세부적으로 자아를 찾는 연습을 도와주는 책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이런 류의 책이 잘 없기도 하고, 딱히 끌리지도 않았는데 최근의 나의 고민과 맞물리면서 더 흥미롭게 읽어내려갔다. 이제 읽고 내용을 나누면서 내가 느낀 걸 전파할 일만 남았다. 독서를 통한 지식 나눔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게 나를 위한 일이고, 또 나를 위한 일이다.


나는 이기적 이타주의자, '빡독 산타'다.


*표지 출처: Photo by Tom Mor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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