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파서 더 우울해져요
오랜만에 우울한 감정을 느낀 하루였다. 황금같은 일요일 아침을 회사 교육 방송(시대에 맞게 유튜브로..!)을 듣느라 4시간을 날렸다. 오프라인으로 시험을 보려다가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시험으로 바뀌어서 모의 시험 테스트까지 한 시간을 포함하면 4시간 반이 걸렸다. 몽롱한 정신으로 버티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오후 1시 반이 넘은 시각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와이프가 차려준 건강식 아침 덕에 배도 잘 채웠건만, 이상하게 스트레스를 받아(이상한 건 아니야. 정상이야) 밀가루와 합성조미료가 가득한 과자를 입에 쑤셔넣었다. 평소에 즐겨 먹던 아메리카노의 향과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자극적인 과자를 목구멍 뒤로 넘기는 용도로 꿀꺽 꿀꺽 넘겨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말이다.
그렇게 먹고 나서도 뭔가 분이 풀리지(?) 않았다. 얼른 나가서 인스턴트 음식으로 성난 나의 정신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이사 온 집 바로 앞에 있는 ㅋㅇ분식점이 맛있다는데, 아내만 가보고 난 아직 가보지 못해 '오늘이 그날'이니 지금 가자고 내가 우겼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야했다. 약간 이성을 잃은 나를 바라보던 아내는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자'라며 내게 동조해줬고, 집에서 3분 거리인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의 기분은 더 나빠져있었다.
"(대충 깜깜해서 안이 안보이는, 누가 봐도 문닫은 가게의 모습)"
"연중무휴라며~! 왜 영업을 안하는거야... 현기증 날 거 같아... 엉엉..."
좌절한 나를 달래주던 아내가 새로 오픈한 떡볶이 맛집을 추천해주며 그리로 가보자고 제안했다. 떡볶이 대회에서 상까지 탔다는 곳이라고 하니, 기대해볼만 했다. 다만 쪼금 더 멀어 가기가 귀찮았을 뿐이다. 그래도 성난 나의 마음(뇌가 원하고 있었다. 자극적인 음식 내놔!!)을 달래기 위해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자리를 옮겼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도착한 그곳에서 우리는 또 좌절을 맛봤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는 연중무휴, 브레이크타임 없음, 이라고 써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문고리에 '브레이크 타임 15시~16시' 써있어서 주문 실패)"
가게에 도착한 시각 15시 정각.. 하지만 저번에 갔던 베트남 식당 사장님 같은 배려는 받지 못했다. 물론 그래도 해달라고 떼쓰는 진상 손님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그래서도 안되고) 군말 없이 그곳을 나왔다. 다만 게으른 나의 몸뚱이와 아침부터 날 괴롭힌 사내 시험 준비 방송이 원망스러웠고, 성난 나의 뇌는 욕망을 거둬들이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있었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처마 아래에서 우리 부부는 처량하게 다음 목적지를 물색했다. 마지막 선택은 전통을 자랑하는 튀김집.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전화를 해봤다.
"띠리리링~"
"네 OOO 튀김집 입니다~(매우 친절한 사장님 목소리)"
내용은 '주말'에는 브레이크 타임 없으니 언제든 오라는 것.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쫄깃하고 매콤달달한 떡볶이와 오뎅, 실한 순대와 퍽퍽하지만 고소한 간, 주종목답게 갓 튀겨내어 살아있는 맛을 보여준 튀김을 음미하며 내 위장과 뇌를 달래주었다. 아, 엄밀히 이야기하면 뇌만 달래준 것이다. 위장은 아마 날 욕하고 있었으리라. 계속 밀가루, 설탕, 기름진 거 넣는다고 말이다.
위장에겐 미안하지만, 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 정확히 이야기하면 나의 뇌는 아직 달래지지 않았다. 튀김집 옆에 있는 '흑당 버블티' 가게가 있다는 걸 귀신같이 기억한 나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그곳에 가자고 했다. 아내는 반쯤 포기한 듯, 군소리 없이 날 따라와줬다. 이럴 때는 잔소리 안하고 따라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주문하신 '흑당 버블 밀크티' 나왔습니다. 흔들어서 드세요~"
당연히 흔들어서 마셔야지. 그래야 달달한 흑당이 골고루 섞여서 빛깔도 은은한 갈색을 띄게 되고 설탕도 뭉치지 않아 일관된 맛을 즐길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두툼한 플라스틱 빨대(생각해보니 환경보호 차원에서도 웬만하면 먹지 말아야겠다. 위장 보호, 환경보호!)를 뻥! 소리와 함께 꽂은 뒤 힘차게 들이마셨다. 크... 맛 좋다!
비 오는 날, 우울한 마음으로 맞이한 나의 주말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갔다. 물론 다른 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이렇게 부정적인 마음과 스트레스 해소성 음식을 먹다 보니 몸이 더욱 처지는 느낌이었다. 귀가한 이후에 나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잠 때문에 버티지 못하고 처져버렸다. 그러나 더 잤다가는 하루를 온전히 망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온전한 휴식이 아니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속이 느끼해서 참을 수 없었지만, 아내가 차려준 현명한 밥상(김치와 두부, 김, 그리고 흰쌀밥 - 탄수화물이 많지만 느끼함을 잡기엔 제격이다)을 먹으며 기분전환을 했고, 힘을 내어 글을 쓸 수 있었다.
평소에는 이렇게 자극적인 음식을 자주 찾지 않는 나였기에, 오늘 나의 행동은 아내가 보기에도, 내가 보기에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정말 회사 스트레스 때문일까. 부지런히 좋은 식단을 먹을 준비를 해뒀다면 이렇게 무너지진 않았을 수도 있겠다. 근데 정말 무서운 건, 스트레스를 풀고 싶단 마음에 한 번 입에 넣은 해로운 음식은 또 다른 안 좋은 음식을 자꾸 부르게 한다는 것이다. 배에 넣을수록 포만감이 느껴지기 보다는, 계속 다른 걸 먹고 싶게 만드는 나쁜 효과를 불러온다. 몸에 건강한 것만 넣어도 부족한데, 나쁜 걸 계속 넣게 만드니 당연히 속이 불편하고 아픈 것이다.
요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음식에 대해 예민해졌더니, 살짝 끈을 놓은 느낌이었다. 한 번의 일탈이었다 생각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야채와 과일(조금), 좋은 지방 먹기, 좋은 단백질 먹기, 탄수화물 적게 먹기, 밀가루+튀김+아이스크림+음료수 최대한 먹지 않기. 쓰기에는 쉽지만 지키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도 그동안 꽤 잘 하고 있었으니, 다시 시작해보자. 나 때문에 아내의 입맛까지 버린 것 같아 미안하다.
이제 당분간 그럴 일 없을거야 여보! 사랑합니다!(갑자기?)
여러분의 주말 식단은 어땠나요? 몸이 즐거웠나요, 뇌가 즐거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