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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Sep 18. 2020

혹시, 은퇴 후 계획은 있으세요?

꿈 이야기 Vol.2

 주 52시간 제도가 도입된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처럼 근로자 300인 이상의 큰 업체와 공공기관은 2018년 7월 1일부로 본 제도가 실시됐기 때문에(작은 규모의 사업장은 아직 계도기간 중) 평일 8시간 근무가 원칙이다. 살인적인 근무시간으로 유명했던 시중은행에 다니고 있던 나는 과연 이렇게 일이 많고 지금도 허덕이는데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제도일까 의문을 품었었다. 나아가야 할 방향은 맞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도입해도 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초반의 어려움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어느덧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언택트 시대를 예측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기술의 발달로 점차 비대면 업무의 빈도가 커지면서 은행을 직접 방문하는 고객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자연적으로 업무량은 줄어들게 되었고, 수익을 내기 위한 영업방식도 바뀌고 있다. 요즘 나는 손님이 없을 때면 주로 어떤 고객들에게 LMS(문자) 마케팅을 할지, 언제, 어떤 상품을 광고하는 문자를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실행하고 있다. 반강제적인 동기로 시작한 업무이지만, 비대면 마케팅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계속 시도해보려 한다. 정말 이러다 점포가 도시에 몇개 안 남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업무 시간이 줄어든 만큼, 한정된 업무 시간 내에 정해진 일들을 소화하려면 집중력을 높여 일해야 한다. 아무리 손님이 줄었어도 업무의 절대량이 그렇게 확 줄진 않는다. 은행이 어디 놀고만 있을까. 돈 나올 구멍을 찾아 열심히 연구하고 직원들에게 새로운 영업 타겟을 찾도록 촉구한다. 은행도 영리 법인이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에 주어진 일과, 주어지지 않은 일을 찾아서 하려다 보면 옆 직원들과 이야기할 시간은 정말 적어진다. 야근이 일상적이던 때에는 저녁을 같이 먹을 때도 많았고, 회식 또한 지금에 비해 훨씬 잦았기에 이야기할 시간이 적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적어지게 마련이고, 예전만큼의 전우애(?)를 느끼긴 솔직히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감 담당(마지막에 퇴근하고 다음날 아침에 가장 먼저 출근해서 문을 여는 일)을 맡아서 다른 직원이 퇴근하길 기다리고 있던 나는 퇴근할 채비를 하시던 부지점장님과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요즘 은행이 일반 상담 업무를 자동화하고 점차 기업 업무와 고자산고객 업무 위주로 직원들의 교육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에 파생되는 여러 가지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였다. 


 나와 띠동갑이신 부지점장님은, 직책에 비해 생각도 젊으신 편이고, 실제로도 동안이신 편이라 내가 친근감을 많이 느끼는 분이었다. 난 술도 끊은데다 회식도 거의 안하는 요즘 시기에 맞물려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마침 퇴근 전까지 컴퓨터도 쓸 수 없고(6시면 다 전원이 꺼짐) 지점장님 퇴근하실 때까지 남는 시간에 이야기나 하자, 라는 식이 되어버렸다.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처음에는 부지점장님의 현재 고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은행이 추구하는 방향, 경쟁, 개인적인 목표, 마지막엔 미래에 대한 청사진까지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졌다. 나는 이런 대화를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특히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는 흔하지 않아 더욱 흥미롭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부지점장님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더 큰 압박을 느끼고 있었고, 생각보다 더 빠른 은퇴를 예상하며 준비를 하고 계신 듯 했다. 

Photo by daniel mccullough on unsplash

 은퇴를 예상한다고 해서(당연히 예상해야 하지만) 회사 일에 소홀히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 둘은 인과관계가 없다. 상관관계가 조금 있을 뿐이다. 부지점장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금방 다가올 은퇴까지는 조금 잘 버텨보자는 생각이셨다. 무엇보다 아직 자녀들이 대학교도 입학하지 않았는데, 졸업시킬 때까지는 다녀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솔직히 내 생각에, 그때까지 버티시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 했다. 당장 내년부터 리테일 영업에서 기업 영업으로 전부 전환시키는 큰 변화가 시작되면, 과열된 경쟁 속에서 새로운 업무를 배워야 하는 더 큰 스트레스와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그 와중에 건강도 챙겨야 하는데, 부지점장님은 그에 대한 준비를 얼만큼 하고 계신지가 궁금했다. 


 다행히도, 마냥 은행에서 살아남을 궁리만 하고 계시진 않은 듯 했다. 나름의 빠른 은퇴가 찾아오면 무엇을 할지 구상하고 계신다고 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려주진 않으셨다. 높은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하셔서 궁금증이 일었으나, 더 캐묻진 않았다. 내 글 소재가 다 떨어지면 한번 캐물어서 글로 써봐야겠다(사랑합니다 부지점장님). 


 "부지점장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그 꿈, 공유해주실 수 있으세요?" 

 미래의 내가 할 질문




 

 누구나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승진과 같은 기분 좋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 한다. 타인에게 인정 받는 일은 거의 모든 순간에 기쁨을 준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인정 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인정 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장이 이뤄지기 때문에 난 인정의 욕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시선에 얽매이는 것은, 눈치를 보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내가 내 삶을 주도적으로 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두려워서 그들의 의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하기 보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고,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걸 선호한다(너무 당연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회사에서 조차 그렇다. 그렇다 보니, 눈 앞에 다가온 승진의 기회를 발로 걷어차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승진의 기회를 놓치고 나서, 나보다 앞서가는 동기들과 후배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을 해봤다. 생각보단 조금 더 더러울(?) 것 같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질 것 같다. 어차피 승진은 나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승진을 빨리 한다고 해서 좋을 것이 딱히 없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성격에, 승진하게 되면 나에게 주어질 책임감에 짓눌려 새로운 스트레스들을 짊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는 누구의 말마따나, 회사에서는 돈 받으며 배운다는 생각으로 다니기 때문에 큰 욕심이 없다. 좋은 기회가 오면 감사하겠지만, 남들만큼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도 아닌데 그 기회를 얻으려고 욕심 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나는 조용히 내 할 일을 하면서, 나의 가정을 챙기고, 내 건강을 챙기고, 내 꿈을 키워나가는 것이 더 큰 목표이다. 꿈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그렇게 주체적으로 내 길을 가는 것이 나름의 꿈이다. 


 내가 세웠던 목표들, 크고 작은 꿈들이 조금 희미해져가는 시기가 왔다. 아내도 함께 보물지도를 그렸던 때가 벌써 2년이 지났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을 다져볼 때가 됐다. 반성 없는 실행은 휴식 없는 행군처럼 무모한 여정이 될 것이다. 조만간 테이블 위에서 열띤 꿈 찾기 작업을 해보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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