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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Sep 21. 2020

시작은 미약하였는데, 나중엔 어떻게 될까?

궁금하면 500원

 다음 주면 추석 연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으로 인해 1년에 2번 있는 친척 간의 모임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누군가에겐 피하고 싶은 시간인 건 팩트지만,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변함 없는 팩트이기에 복잡미묘한 감정이 드는 요즘이다.


 명절을 앞두고는 유부남, 유부녀에게 각자 처가와 시댁에 가야 하는 부담감이 좀 있기도 하지만 '설렘' 또한 존재한다. 휴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나 또한 1년에 몇 번 없는 긴 연휴를 기다리곤 한다. 근데 이번 연휴를 앞두고서 특별히 날 설레게 하는 또다른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기획한 '사내 독서 모임'이다.


 오 마이 갓..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모자라, 직원들과 독서 모임을 한다고..? 이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저을 수도 있겠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건 내가 스스로 결성한 모임이기에 철저히 내 취향(?)에 맞춰 진행할 예정이다. 멤버도 단촐하다. 나 포함 2명. 아하하:)


 처음 독서 모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욕심이 앞서서 사람을 많이 모으려고 계획했었다.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지역에 거주중인 젊은 직원들과, 옆 동네(차로 30분 거리) 직원들에게까지 홍보하여 모집할 예정이었지만, 그건 그냥 욕심이었다. 애초에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 적기도 했고, 단순히 친목 목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독서에 대한 갈망이 있고, 토론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 아니면) 니즈가 확실한 사람하고만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책을 멀리 하던 내가, 이제 책 좀 읽기 시작했다고 번데기 앞 주름 잡던 시절에 주변 젊은 동료들에게 책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 관심이 없었고, 읽는 사람도 대부분 에세이 위주였다(에세이 비하 노노!). 나의 독서 니즈는 대부분 자기계발, 경제/경영 분야에 치중됐기에 함께 독서 모임을 하고 싶어지는 사람은 없어 아쉬움을 삼켰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중, 사내 메신저를 통해 안부를 묻던 친한 후배 한 명이 '무기력한 직장 생활'에 대해 한탄을 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서로 궁시렁거리며 세상 탓만 하다가 의미 없는 "파이팅!"을 외치며 대화를 마무리 했겠지만, 독서를 통해 자기계발에 재미를 느끼며 슬럼프를 극복중이던 나는, 후배에게 어줍잖은 '조언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꼰대처럼 이래라저래라 한 것은 아니고, 진지하게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주면서 그 친구가 지금의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던 걸로 기억한다(인간의 기억은 온전치 못하다..).


 그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나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내가 했던 시간관리 방법, 독서의 효과 등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본인도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다. 내가 사줬는지 어쨌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아, 세월이여..) 1시간 단위로 자신이 한 일을 기록하고 반성할 수 있는 노트북 '폴라리스'를 구입하게 된 후배는 나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본인만의 자기계발 세계를 구축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둘의 교감은 시작되었다.


Photo by linkedin sales navigator on unsplash




 서로 가정이 있고, 어린 자녀까지 있는 후배의 여건상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건 쉽지 않은 환경이다. 단지 친목을 위해 만나는 것은 서로의 가정을 위해서도 좋지 않기 때문에(나쁘다기 보단, 굳이? 가족을 두고 우선순위로 만날 일은 아니라는 것) 만남을 거의 갖지 않고 미뤘었다. 그러다가, 마침 나의 독서 루틴이 망가져가고 있던 차에 '함께 독서할 수 있는 환경설정'을 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이 친구와 함께 독서 모임을 해서, 꾸준히 책도 읽고 토론도 하자고. 같은 직장에 몸담고 있으니, 회사에 적용할 만한 내용을 토론해볼 수도 있으니 효과가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절할까 떨리는 맘(?)으로 메신저를 보냈고, 이 고마운 후배는 흔쾌히 그러자고 동의해줬다. 억지로 사람을 모으지 말고 소소하게 해보자고 제안한 것도 이 친구였다. 고맙다, 시키야.


 그렇게 역사적인 <OO은행 독서모임>은 곧 막을 올린다. 촌스럽게 이름 따위는 짓지 않으려고 했지만, 왠지 지어야 할 것 같다. 좀 더 고민해보고 결정해야겠다. 글로 쓰고 나니, 더 설렌다. 그리고 떨린다. 아직 다 못읽어서 후배한테 혼날까봐..


 이 활동이 우리의 삶에 당장 큰 변화와 이득을 주진 못하겠지만, 이런 류의 생산적이고 규칙적인 활동이 장기적으론 우리의 삶에 좋은 영향을 점진적으로 미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그렇게 해야만 가족들도 지지해줄테니까). 서로 지역이 멀어져서 도저히 모임을 지속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 꼭 이어가고 싶다.


너도 그렇지? 아,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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