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태풍 사라
1959년 9월, 여름의 마지막 흔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섬의 공기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계절의 변화와는 다른, 훨씬 더 근원적이고 불길한 종류의 변화였다. 바람은 더 이상 일정한 이름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 동쪽에서 불어오다가, 갑자기 심술궂은 아이처럼 방향을 틀어 서쪽에서 몰아쳤고,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숨을 죽였다. 그럴 때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져,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이질적인 정적이 흘렀다. 그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거대한 폭발 직전에 찾아오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진공(眞空)과도 같았다.
바다는 더 이상 푸른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깊은 곳에서부터 누군가 거대한 붓으로 잿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탁하고 무거운 빛을 띠고 있었다. 파도는 해안가에 부딪혀 부서지는 대신 성난 짐승처럼 해안선을 집어삼킬 듯 밀려왔다가, 힘없이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새들은 더 이상 날지 않았고, 닭들은 홰에 오르지 않았으며, 이시돌의 소들은 풀을 뜯는 대신 불안한 눈빛으로 하늘의 한 지점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울어댔다. 그 울음소리는 슬픔이라기보다는, 어떤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를 향한 경고에 가까웠다.
마을의 노인들은 하늘을 보며 혀를 찼다. 그들의 주름진 얼굴에는 수백 년간 이 섬에서 살아남은 자들만이 읽어낼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원초적인 경외와 공포가 서려 있었다. “바람이 길을 잃었어. 하늘이 숨을 참고 있는 게야. 큰 게 오려나 보다.” 그들의 나직한 속삭임은 아침 안개처럼 마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안의 씨앗을 심었다.
임피제 신부는 그 모든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농부였던 아버지는 폭풍이 오기 전,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패트릭, 냄새를 맡아보렴. 바람에서 쇠 냄새가 난단다. 하늘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게지.” 지금 한림의 바람에서는, 정확히 그 냄새가 났다. 그는 낡은 단파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려 미군 방송에 주파수를 맞췄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너머로, 기상 예보관의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필리핀 동쪽 해상에서 발생한 거대한 태풍이, ‘사라(Sarah)’라는 이름을 얻고, 무서운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예보관은 그 태풍이 한반도를 비껴갈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지만, 임피제는 그의 목소리에 실린 미세한 불안감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지금껏 가난과, 무지와, 편견과, 그리고 최 사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논리와 싸워왔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고, 이성으로 상대할 수 있는 적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적은 달랐다. 그것은 아무런 감정도, 의지도 없이, 그저 자신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 그 자체였다. 그의 시스템과, 논리와, 진심이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대. 그는 이시돌의 초원과, 정성껏 지은 외양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소중한 생명들을 떠올렸다. 그 모든 것은 이 거대한 자연의 숨결 한 번에, 허무하게 지워져 버릴 수도 있었다.
그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이시돌 언덕이었다. 김만수와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묵묵히 돌을 골라내고 있었다.
“김 선생.” 임피제가 불렀다. “큰 비바람이 올 것 같습니다. 목장을 단단히 준비해야 합니다.”
김만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을 겁니다, 신부님. 이 섬에서는 늘 있는 일인데요, 뭘.” 그의 목소리에는 이 섬사람 특유의, 자연의 변덕에 대한 체념적인 낙관이 묻어 있었다.
“아닙니다. 이번은 다를 겁니다. 제 예감이 그렇습니다.”
임피제의 단호한 목소리에, 김만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신부의 예감이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은 외양간의 지붕을 밧줄로 엮어 단단히 고정하고, 바람이 들어올 만한 틈을 판자로 막았다. 젖소와 송아지를 외양간 가장 안쪽으로 옮기고, 며칠 동안 먹을 건초와 물을 충분히 쌓아두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멀찍이서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최 사장의 중력에 더 강하게 이끌리고 있었다.
최 사장은 자신의 현대식 축사 건설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의 축사는 이미 번듯한 지붕까지 갖추고 있었다. 육지에서 가져온 아연 도금 강판은 햇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고, 콘크리트로 타설한 기둥은 그 어떤 바람도 견뎌낼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저 양반, 아직도 저러고 있군.” 최 사장은 자신의 현장 감독에게 말했다. “하늘의 변덕 따위는 인간의 기술로 극복할 수 있는 거요. 저렇게 밧줄 몇 개로 묶는다고 태풍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소? 저건 신앙이지, 과학이 아니란 말이오.”
그는 자신의 축사가 가진 기술력을 맹신했다. 그는 오히려 태풍을 대비하려는 임피제와 마을 사람들을 ‘전근대적인 호들갑’이라며 비웃었다.
바로 그때, 신당을 지키는 변씨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그의 등장은 마치 잘 짜인 연극의 한 장면 같았다. 그는 이시돌 언덕과 최 사장의 공사장을 번갈아 가리키며, 하늘을 향해 팔을 뻗으며 외쳤다.
“보아라! 하늘이 마침내 노하셨다! 저 이양인이 이 신성한 땅에 부정한 것을 들여오고, 땅의 혈맥을 끊고, 짐승의 젖으로 우리를 더럽히니, 하늘의 신께서 마침내 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저 오만한 육지 놈은 또 어떠한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쇠와 시멘트로 땅의 숨통을 막고 있으니, 함께 벌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각자 집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그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려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태풍 전야의 기묘한 대기와 공명하며, 사람들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원시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그의 말은 논리적으로는 터무니없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지극히 설득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은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새로운 희망과, 오래된 공포 사이에서.
“아닙니다!” 임피제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이것은 신의 벌이 아닙니다. 그저 자연 현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함께 힘을 합치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피와 땀으로 일군 이것들을, 우리 스스로 지켜내야 합니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변씨 노인의 저주와 최 사장의 현대적인 자신감 앞에서 힘을 잃는 듯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들은 익숙한 공포를 택했다. 미지의 희망을 위해 싸우는 것보다, 낡은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목장에는 임피제와 김만수, 영호, 그리고 강매실과 그녀의 아이들만이 남았다.
그날 밤, 마침내 태풍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조금 거센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은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문틈과 창틈으로 비집고 들어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모든 것을 흔들었다. 빗줄기는 더 이상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채찍이 되어, 수평으로 날아와 세상 모든 것을 후려쳤다.
임피제와 남은 사람들은 외양간 안에서 서로의 몸에 의지한 채, 공포에 떨었다. 외양간은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작은 조각배처럼 삐걱거렸다. 판자로 막아놓은 벽의 틈새로, 칼날 같은 바람과 비가 들이쳤다. 소들은 겁에 질려 불안하게 울어댔고, 그 울음소리는 바람 소리에 섞여 처절하게 들렸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외양간 지붕의 일부가 뜯겨져 나갔다. 찢어진 지붕 사이로, 하늘의 분노가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다. 비바람이 소들과 사람들을 가차 없이 후려쳤다.
“안 돼!” 김만수가 절규하며, 날아간 지붕을 막으려 뛰쳐나가려 했다.
“위험합니다!” 임피제가 그를 붙잡았다.
바로 그때였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굳게 닫혀 있던 외양간 문이 거칠게 열리며, 횃불을 든 마을 사람들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들이닥친 것이다. 그들의 앞에는 마을 원로 고봉수가 서 있었다. 그는 비에 젖어 축 늘어진 갓을 고쳐 쓰며, 임피제를 향해 소리쳤다.
“신부님! 우리가 뭘 하면 되겠소!”
그들은 돌아갔다가, 다시 온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귓가에는 바람 소리보다 더 크게, 이시돌에서 들려오는 소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단순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애써 외면했던 희망의 비명 소리였다. 그들은 깨달았다. 여기서 무너지면, 자신들은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가난과 체념이라는, 태풍보다 더 지독한 어둠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지붕으로! 지붕을 막아야 합니다!” 임피제가 외쳤다.
그때부터 인간과 자연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남자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 미끄러운 지붕을 붙잡고 날아간 부분을 판자와 볏짚으로 필사적으로 막았다. 여자들은 쉴 새 없이 밧줄과 도구를 날랐고, 강매실은 아이들을 다독이며 소들을 진정시켰다. 바람은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몇몇은 지붕에서 미끄러져 떨어졌지만,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받아내어 다시 위로 올려 보냈다.
그들의 얼굴에는 더 이상 공포가 없었다. 그 자리에는 자신들의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자의, 숭고하고 비장한 결의만이 가득했다. 그들은 더 이상 흩어진 개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거대한 자연의 분노에 맞서는, 하나의 단단한 공동체였다.
밤새 이어진 사투 끝에, 새벽이 밝아올 무렵, 바람은 거짓말처럼 힘을 잃기 시작했다. 빗줄기도 서서히 가늘어졌다. 마침내 태풍이 지나간 것이다.
사람들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외양간 밖으로 나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전쟁이 휩쓸고 간 듯한 폐허였다.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반파되었고, 밭은 온통 물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기적처럼, 이시돌의 외양간은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다. 비록 상처투성이였지만, 그 안의 소들은 모두 무사했다.
그때,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비명이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최 사장의 현대식 축사가 있던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축사는 온데간데없었다. 번쩍이던 아연 도금 강판 지붕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저 멀리 날아가 있었고, 튼튼해 보이던 콘크리트 기둥들은 맥없이 부러져 있었다. 그의 ‘과학’과 ‘효율’은, 이 섬의 진짜 바람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동이 터 오르는 잿빛 하늘과, 폐허가 된 마을,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외양간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허탈함과 안도감,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피로감이 뒤섞여 있었다.
임피제는 사람들 앞에 섰다. 그의 옷은 흙과 비로 엉망이었고,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그의 나직한 한마디에, 누군가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은 전염병처럼 번져나가, 마침내 모두의 통곡이 되었다. 그것은 상실에 대한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낸 자들만이 흘릴 수 있는, 뜨겁고도 정화되는 눈물이었다.
그날 아침, 신당의 변씨 노인은 자신의 신당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폐허가 된 마을과, 그 속에서 서로를 부축하며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시대가, 이제 완전히 끝났음을 직감하면서.
임피제는 생각했다. 태풍은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주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집과 밭을 무너뜨렸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마지막 불신의 벽을 허물어버렸다. 이제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되었다.
잿빛 하늘 아래, 폐허 위에서, 그는 이 섬의 진짜 기적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음을 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