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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토마토 Apr 06. 2021

내 마음대로 파스타

파스타

냉장고의 자투리 야채를 소진해야 할 때, 마땅히 먹을만한 음식이 없을 때, 10분 안에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을 때 나는 파스타를 만든다. 마늘 한 줌과 올리브 오일로 만드는 알리 올리오도 토마토소스와 양송이버섯이 듬뿍 들어간 토마토 파스타도 맛있지만 보통의 나는 대충대충 만든 파스타를 선호한다. 


파스타면은 떨어지기 무섭게 늘 쟁여두지만 시판 소스는 사지 않는다. 대신 케첩, 마요네즈, 간장, 굴소스, 고추장 등 집에 있는 양념으로 그때그때 소스를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 파스타와 고추장, 파스타와 간장은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정말 잘 어울린다. 부엌 찬장 깊은 곳 숨겨두었던 참치캔을 따서 간장, 설탕, 굴소스와 함께 볶은 파스타는 동양적인 매력이 있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햄을 꺼내 양파와 고추장, 설탕, 케첩과 함께 삶은 파스타면과 볶으면 소시지 야채 볶음이 아닌 멋들어진 파스타 야채 볶음을 만들 수 있다. 짜장을 만들고 남은 춘장이 있다면 짜장면을 대체할 짜장 파스타도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파스타야 말로 무궁무진한 재료들과 어울리는 진정한 팔방미인이라 부를 수 있겠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이 편견 없이 함께 어우러졌을 때 늘 기분 좋은 놀라움이 날 기다렸다.


조금 괴상해 보이는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한 건 오랜 시간 여행을 시작하면서 였다. 며칠에 한 번씩 숙소를 옮겨야 하는 여행자가 다양한 식재료를 들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을 생각하면 매 끼니 외식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적어도 한 끼 이상은 요리를 해야 했고 이상한 파스타는 한정된 재료에서 최대한의 맛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였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파스타는 라면 파스타였다. 한국에서 미리 챙겨간 대용량 라면수프와 파스타면의 조합은 궁상맞아 보이지만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오랜 시간 파스타에 의지해서 일까 여행을 멈춘 지금 이 순간에도 파스타를 만들면 금방이라도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다.


내가 만드는 파스타는 자유롭다. 자유로웠던 그 시절의 나와 닮아 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어도 용감했던 그때의 나처럼, 한 없이 부족한 재료들로 최선의 맛을 만들어내는 나의 파스타는 무척이나 과감하다. 누군가에게는 이 결과물이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뭐 어떤가. 그게 바로 내 맘대로 만드는 파스타의 매력인 것을. 나는 앞으로도 이상해 보이는 파스타를 잔뜩 만들고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 모습이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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