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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토마토 Dec 03. 2020

엄마가 보내주는 김치

엄마의 사랑은 직관적이고 때로는 일방적이며 늘 가슴이 아프다. 누군가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냉장고에 가득 찬 김치만큼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 집은 따로 김장을 하지 않는다. 대신 소량의 김치를 매번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담근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는 명절 음식을 하는 대신 대여섯 포기의 김치를 담근다. 엄마는 양념을 준비하고 아빠는 무를 썰고 나머지는 배추에 버무린다. 흡사 분업이 잘된 공장과도 같이 다들 잽싸게 움직인다. 김치가 있으면 밥 두 공기도 너끈히 비우는 아빠를 위해 엄마는 몇 개월에 한 번씩 김치를 담갔다. 싫다는 내색 없이 늘 엄마는 배추를 다듬고 소금을 뿌리고 그 고된 일을 아무렇지 않게 늘 해내곤 했다. 그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빠와 다르게 나는 김치를 많이 먹지 않는다. 김치가 아무리 맛있어도 김치만으로 밥 한 공기를 다 비울 수는 없다.  김치찌개나 김치볶음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엄마는 늘 내 냉장고 속의 김치를 걱정한다. 익은 김치는 있는지 알타리 김치가 먹고 싶지는 않은지 깍두기를 좀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 호시탐탐 김치를 보낼 기회를 엿본다. 그런 엄마 덕분에 좀처럼 냉장고에서 김치가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김치 안 먹어도 맛있는 거 잘 먹고사는데 왜 김치가 없을까 봐 걱정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룸의 작은 냉장고를 꽉 채운 김치를 보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치밀어 오르곤 했다. 이 작은 냉장고에 왜 이렇게 많은 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 답답했고 왜 이렇게 김치를 못 보내줘서 안달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일방적인 사랑과 헌신 그리고 애정이 부담스럽고 가끔을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날 울적하게 만들었다. 김치를 포함해 먹지도 못할 많은 양의 음식이 가득 찬 냉장고와 몇 달을 살아야 하는 숨 막히는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나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 한치의 망설임 없는 그 사랑의 표현을 그만 두면 좋겠다고 엄마에게 매정하게 말할 정도로 나는 모질지 못했다. 시간이 상해버린 음식을 짜증스럽게 정리하는 것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사를 하고 커다란 냉장고가 생기자 엄마는 본격적으로 많은 양의 음식과 김치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못 먹는다고 필요 없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에게 택배를 보내는 그 행위 자체가 엄마에게 행복이었고 기쁨이었다.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그 충만함이 끊임없이 엄마를 움직였다. 엄마의 기쁨을 위해서 택배를 받고 한숨을 쉬고 음식을 정리하고 버리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별것도 아닌 일 같지만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음식이 가득 찬 냉장고를 정리하다 화가 나서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집을 떠난 지 벌써 수년이 지나서 내 입맛은 많이 변했고 좋아하는 음식도 엄마가 알고 있는 것과 달라졌다. 하지만 엄마는 고등어를 보면 어릴 때 내가 고등어구이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떠올리며 나에게 전화를 건다. 고등어 좋아하는데 못 먹어서 어쩌냐는 그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이 세상 어느 자식이 매정하게 전화를 끊을 수 있단 말인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음식을 쌓아두고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조금씩 소량의 식재료로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 좋다. 새로운 향신료를 써보는 일이 신나고 처음 보는 식재료로 요리를 해보는 일은 설렌다. 하지만 엄마가 음식과 김치를 보관하면 냉장고에는 더 이상의 자리는 없다.


내가 들어도 무거운 택배를 엄마가 매번 낑낑대며 보내는 그 과정도 너무 싫다. 팔이 아파서 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서 자식 준다고 무리하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해서 화가 난다. 나는 그걸 받아도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뿐인데. 뭐가 예쁘다고 늘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상상하면 엄마에게 달려가 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이 산더미 같은 택배를 받지 못하게 될 미래의 어느 날, 내 취향대로 깔끔하게 채워진 냉장고를 보며 무너지듯 울음을 터트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의 사랑은 늘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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