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맛보며 산다는 건 행복한 사치를 부리는 일이다.
주말만 기다리며 주중을 힘겹게 버티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계절을 느끼며 사는 건 쉽지 않다. 하루가 어떻게 끝나는지도 모르겠는데 계절을 느끼며 살라니! 눈뜨면 주말이 끝나 있고 정신 차려보면 일하고 있는데 계절을 어떻게 느끼며 삽니까. 바뀐 계절을 눈치채는 순간은 옷장에서 패딩을 꺼낼 때와 패딩을 집어넣을 때 뿐이다. 요즘 같은 시국에는 여행을 가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데 어디서 지나가는 계절을 느낄 수 있을까.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다가도 금방 꽃이 피는 계절이 되곤 하는데 우리의 삶은 왜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을까. 그렇게 지치고 우울한 날들이 계속된다면 제철 음식을 챙겨 먹자. 인터넷으로 바다 건너 먼 나라 이웃나라의 제품도 쉽게 주문할 수 있는 글로벌 시대에 제철 음식을 챙겨 먹자는 이야기는 조금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다는 건 가장 쉽고 행복한 방법으로 계절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겨울에 장을 보다 우연히 과메기를 발견했다.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과메기는 엄청나게 생소한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한 번도 과메기를 본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기에 겨울이 과메기 제철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생소하지만 한번 먹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과메기를 집으로 들고 왔다. 그리고 그 과메기는 엄청나게 맛있었다. 약간 비릿하지만 바다의 감칠맛과 부드러운 지방의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계속 입으로 들어갔다. 그날 배 터지게 과메기를 먹고 매우 만족한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제철 음식에도 흥미가 생겼다. 제철 과메기도 이렇게 맛있는데 내가 모르거나 놓치고 있었던 다른 제철 음식들도 맛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과메기를 시작으로 대하, 꼬막, 비름나물, 냉이 등등 계절에 걸맞은 식재료를 주문해서 먹어보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클릭 몇 번이면 전국 각지의 신선한 식재료들을 집 앞에서 받아 볼 수 있었다. 집에서 맛보는 계절은 나에게 허락된 사소하지만 충만한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다.
요즘의 나는 달력을 보며 딸기와 복숭아를 떠올리고 바지락을 생각한다. 눈부신 하늘 한번 보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났을지라도, 차가운 회색 건물 안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버려 계절을 놓쳐 버렸더라도 우리 모두가 계절을 느끼며 사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철 음식을 챙겨 먹으며 계절을 맞이하거나 작별을 고하며 다가올 시간을 기대하자. 계절을 맛보며 행복한 사치를 부리자. 그렇게 또 한 번 올 겨울에 먹을 과메기를 기다리며 바지런히 다른 계절의 맛을 즐겨야겠다. 앞으로 챙겨 먹을 제철 음식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삶이 풍성해진 기분이 들어 마음이 들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