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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토마토 Mar 25. 2021

사실 내가 만들어도 떡볶이는 맛있었다

터치 몇 번이면 집으로 떡볶이를 배달시킬 수 있는 현대 사회는 그야말로 떡볶이의 황금기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이사하기 전 신전떡볶이가 도보 10분 거리에 있어서 배달 떡볶이는 자주 먹지 않았지만 배달 떡볶이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는 송탄의 '세모 분식'의 당면 떡볶이다. 달큼한 양념을 머금은 당면과 치즈떡의 조화는 그야말로 천국의 맛이다. 데이트를 할 때마다 떡볶이를 먹자는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번 떡볶이를 먹었던 남편에게 아주 조금 미안하지만 떡볶이야 말로 최고의 소울푸드이자 가성비 음식 아니겠는가. 참고로 다른 이야기지만 세모 분식 옆에 마카롱 가게가 있었는데 떡볶이를 먹고 거기서 마카롱 하나를 사서 디저트로 먹는 것이 우리의 완벽한 데이트 코스였다. 


하지만 집에서 떡볶이를 만들면 왜인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집에서 만든 떡볶이가 맛이 없다고 각인이 된 건 유감스럽게도 엄마의 떡볶이가 정말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만든 음식이 맛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 엄마표 떡볶이는 정말 맛이 없었다. 유년시절 먹었던 최고의 떡볶이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떡볶이였다. 그 떡볶이는 엄마가 만들어준 떡볶이와 다르게 무척 맛있어서 놀랐다. 분식집이 아닌데 떡볶이가 이렇게 맛있다고?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떡볶이는 두 눈이 번쩍 떠질 정도로 맛있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왜 떡볶이를 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맛있었다는 기억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현명한 어린이는 집 떡볶이가 맛이 없다고 말하면 엄마가 상처 받을 것을 알아 입 다물고 조용히 떡볶이를 먹곤 했다. 그래도 맛이 없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놀라운 건 우리 집에서 만든 떡볶이만이 맛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남편과 집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유년시절에 먹었던 집 떡볶이가 너무 맛이 없었다고 말을 꺼냈는데 남편 또한 집 떡볶이가 너무 맛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우리 집 떡볶이만 맛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묘한 동질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자고로 떡볶이란 사 먹는 것이지. 떡볶이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아니다.


집에서 떡볶이를 만들면 맛이 없다는 인식이 엄청나게 확고해지면서 떡볶이는 감히 내가 만들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의 음식이 되었다. 내가 감히 집에서 떡볶이를 만든다고?! 집에서 수제로 치킨도 만들어 먹으면서 떡볶이는 신성불가침 영역의 음식이 되어 시도 조차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운명처럼 마트에서 990원의 떡볶이 떡과 1500원의 어묵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저렴한 가격을 보고 외면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방에서 떡볶이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 나. 배달 떡볶이는 기본 15,000원이라서 비싸단 말이다. 만들어 먹는 것과 배달시켜 먹는 것의 엄청난 가격 차이에 슬그머니 신성불가침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야말로 자본주의에 굴복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유튜브에서 백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차근차근 만든 떡볶이는 엄청 맛있었다. 떡볶이를 만든 스스로가 감탄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시도도 안 해보고 겁먹었던 내가 우스울 정도로 떡볶이는 맛있었다. 그동안 안 만들어 먹은 게 슬퍼질 정도로 맛있는데 왜 난 떡볶이를 안 만들어 먹었지. 사실 떡볶이뿐만이 아니다. 겁나서 무서워서 실패할까 봐 도망치고 외면했던 모든 일들이 사실은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새롭게 도전한 일이 망해도 인생 전체가 망하는 건 아니니까.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지나친 걱정으로 시도하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다음에 새로운 기회가 나에게 찾아온다면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창피하다던가 걱정된다는 염려는 잠시 묻어두고 말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주다니 역시 떡볶이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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