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삶은 우습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살아 지기도 한다.
화진은 딱히 죽고 싶은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삶에 커다란 애착이나 열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래를 생각하기에는 현재가 너무 버거웠고 과거를 떠올리면 슬픔이 끝없이 밀려왔다. 누군가는 화진을 보며 염세적이며 부정적인 우울증 환자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화진은 자신이 우울증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인이 우울증이던 아니던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어쩌면 화진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 발목을 접지르거나 화상을 입으면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 처럼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치료하러 병원에 가야한다. 그러나 화진은 몸이 아파도 약국에서 사온 진통제 몇알을 빈속에 들이붓고 잠에 들 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마음을 돌보기 위해 병원에 갈리 만무했다. 어쩌면 화진은 본인이 아픈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살을 생각한적은 없지만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했다. 능동적인 죽음이 아니라 수동적인 죽음이라면 마음의 죄책감없이 모든것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수 있다면 생명을 스스로 끊어버린다는 실낱같은 죄책감 마저 연기처럼 사라질 것 이다. 화진이 바라는건 본인의 적극적인 선택이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 이었다. 그 소원은 아주 어려웠기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녀의 하루는 어제와 같을 것 이다. 그렇게 화진은 어제와 다르지만 똑같은 하루를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당신은 가난해도 행복 할 수 있다고 믿는가. 가난과 불행속에도 꿋꿋하게 작은 행복의 편린들을 모으는 사람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가.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 이다. 이 세상은 넓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며 미래는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화진은 그런 아름답고 밝은 이야기들을 믿지 않았다. 화진은 직관적이고 확실하게 보이는 것들만은 믿었다. 그것이 화진이 삶을 이어나가는 바탕이 되었다.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차가운 세상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는건 꽤 고된 일이었다.
스물 한살의 봄. 화진은 잔인한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세상에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엄마가 그녀의 곁을 떠났다. 낡아버린 육신을 떠나버린 엄마는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차갑게 굳어버린 손과 말라버린 두 뺨이 더 이상 엄마는 이곳에 없다고 잔인하게 말해주었다. 화진이 엄마를 사랑했던가. 잘모르겠다. 피곤과 피로가 화진의 뇌를 망가트린 것만 같았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엄마의 옆자리를 지키느라 어른이 되어야했던 화진은 어딘가 텅 비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웃자라버린 화진은 더 이상 어린아이 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화진이 온전한 어른이 된 것은 아니었다. 두려움과 서글픔에 가득찬 그날의 화진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아무리 울어도 화진의 지겨운 삶은 쉬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하더라도 화진은 이 삶을 계속 살아나가야 했다. 때가되면 밥을 먹어야했고 씻어야 했으며 돈을 벌어야했다. 집세를 내고 공과금을 처리하고 빨래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면서 삐그덕 거리를 삶을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이러한 현실이 곤고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화진은 우는것을 멈추고 잔인한 삶을 최대한 어르고 달래며 끌고 나갔다. 그것 말고 화진이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화진은 삶의 의미나 목적에 대한 생각을 더이상 하지 않는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울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주저앉아 울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기에 슬픔을 느끼고 애도하는것 또한 그만 두었다. 잔혹한 인생은 화진에게 슬픔을 만끽할 충분한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얄궃게 인생의 길고 어두운 계절은 연약한 인생을 쉽게 흔들어 놓는다. 그렇게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시간들이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