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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늘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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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토마토 Oct 23. 2021

바늘 02

“바늘이 있네요”


흰 머리가 가득한 중년의 의사의 말이 하얀 진료실 안을 울렸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의사의 흰 머리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화진은 방금 들은 현실성 없는 말이 이해가 안간다는듯 가느다란 눈썹을 조금 찡그렸다. 바늘이라니. 내가 알고 있는 바늘을 말하는 걸까.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꺼내려 했지만 화진의 목소리에는 짙은 당혹감이 서려있었다. 


“바늘이라니요? 어디에요?”

“환자분 가슴 근처에 바늘이 있습니다. 여기 사진 보이시죠? 여기 엑스레이에 찍힌 가느다란 이것이 바늘입니다.”


화진의 당혹스러움을 이해한다는 듯 의사는 살짝 고개를 끄덕거렸다. 의사의 말이 가르킨 까만 엑스레이 사진에 가늘고 뾰족한 어떤한것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주 얇고 끝이 뾰족하고 작은 구멍이 있는 그것은 바늘 이외에 그 어떤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화진은 뚫어져라 엑스레이 사진을 바라보았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바뀌는것은 아니었다. 어찌할바를 모르는 화진을 향해 의사가 차트를 넘기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전에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저는 태어나서 한번도 수술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화진은 수술용 메스가 환자 몸 속에 들어 있는 상태로 상처가 봉합되었다는 의료사고 소식을 떠올리며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화진은 사랑니 발치를 한것 이외에 수술이라고 부를만한 어떠한 의료 행위도 받아본 기억이 없다. 그런 화진의 몸속에 어째서 바늘이 들어 있는 것 일까.


“근래에 바늘이 있는 부위에 통증을 느끼신적이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지금으로써는 왜 바늘이 몸속에 들어가 있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다행히도 큰 이상은 없어 보여서 가능하면 무리하게 바늘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 보다는 추적관찰을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바늘의 위치가 크게 위험하지 않으니 한번 지켜보도록 하지요.”


병원을 나온 화진은 한참동안이나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병원 문앞에 오도카니 서 있는 화진의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대며 바라봤지만 화진은 눈치채지 못했다. 예기치 못한 소식에 머리를 크게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찌할바를 몰랐다. 화진은 자주 피곤하고 자주 지쳤지만 그정도는 밥벌이를 하는 누구나가 겪는 고통이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환절기에 쉽게 감기에 걸려 며칠을 앓아 눕기도 했지만 병원에 갈만한 증상은 아니라 생각했다. 이번에 병원을 온것도 회사에서 제공하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서였고 특별히 몸의 이상을 느끼지 못했는데 난데없이 바늘이 있다니. 어쩌다 바늘이 몸속에 들어가게 된걸까. 화진은 바늘이 위치한 부위가 묘하게 간질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몇번이고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 몸속에 바늘이 있어.


화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입을 막았다. 말하면 안될 비밀을 뱉어 낸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누가 듣는다면 화진을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화진은 자리를 옮겼다.


화진의 몸 속에는 바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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