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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늘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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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토마토 Oct 23. 2021

바늘 03

화진의 모친은 바다를 좋아했다. 그녀는 늘 입버릇처럼 바다근처에 집을 얻어서 질릴 때 까지 바다를 보는게 꿈이라고 말했다. 어느날  알수없는 행운이 불쑥 찾아온다면 바다 근처에 작은 집을 얻어 질릴때 까지 바라보며 조용하게 살고싶다고 했다. 고작 그정도의 소망이 전부인 삶 이었다. 상상속에서도 화려하고 윤택해 보이는 삶의 끝자락 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오래되었지만 관리가 잘된 작은집에서 삶을 갈무리하는 것이 그녀의 소망이었다.  차로 몇 시간 달리면 볼 수 있는 바다를 평생 그리워 하며 살아야만 했다. 고작 몇시간이면 그녀의 낙원에 도착 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팍팍한 삶은 그녀에게 그정도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거칠어진 모친의 손은 늘 바지런히 일감을 찾아 바쁘게 움직였다.바다를 꿈꾸는 모친의 눈빛은 언제나 슬프게 일렁거렸다. 


엄마는 날 사랑했을까. 


사랑의 형태는 너무나 제각각이라 사랑을 받을 때에는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화진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해내지 못했을 수 많은 일들을 모친은 해냈다. 제대로 쉬지 못하고 차가운 냉동창고에서 짐을 정리해서 번 돈으로 집세를 내고 화진이 먹을 음식을 샀다. 그렇게 평생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홀몸으로 화진을 지켰다. 튼튼하고 커다란 방파제가 되어주지는 못했지만 하나뿐인 작은 아이를 위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낡고 병든 몸을 아낌없이 내던지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아이를 온전히 키우는건 쉽지 않은 일 이었다. 분명히 최고의 방법은 아니었더라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는데 매일매일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것은 왜 일까.

화진은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다. 


사랑한다는 말 뿐만 아니라 귀엽고 맛있어보이는 소풍 도시락, 학예회에 참석해주는 부모님, 방학 체험학습, 진로상담 그 어느것도 화진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 원망, 슬픔, 갈망이 뒤엉켜 화진을 괴롭혔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야만 경험 할 수 있는 일 이라는 것을 알까.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수 많은 구멍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누구를 원망하면 좋았을까. 무엇을 미워하면 덜 힘들었을까. 살아남기 위해서 화진은 스스로를 보살펴야 했다. 어린아이가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한 시간이었다. 아직은 몰라도 괜찮았을 세상의 슬픔은 일찍 알아버린 어린이의 유년시절은 일찍 끝나버렸다. 하지만 그때의 화진은 모친의 젊음과 미래 또한 화진의 유년시절과 함께 아주 깊은곳으로 가라 앉아 버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화진에게 엄마는 처음 시작부터 엄마였기 때문에. 

내가 엄마를 사랑했던가.


화진은 몇벌 되지 않는 모친의 옷가지를 정리하며 생각에 잠겼다. 30대의 엄마가 입던 옷을 40대의 엄마가 물려받았다. 보풀이 잔뜩 일어난 스웨터, 유행이 지난 청바지, 구겨진 셔츠를 상자에 집어넣으며 화진은 조금 울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모친의 살냄새가 옷 구석구석에 배어 있었다.  50대의 엄마가 이 옷들을 입지 않기를 바랐다. 모친이 이제 그만 낡은 옷을 정리하고 비싸진 않더라도 정갈하고 단정한 새옷을 사 입기를 원했다. 고작 내가 바란건 그런 미래였는데. 내가 바란건 낡고 얼룩덜룩한 옷들을 정리하고 깨끗하고 단정한 새 옷들이 장롱에 채워지는 것 뿐 이었는데.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은 삶이란 이 얼마나 잔인하고 모진지 모르겠다.


서로에게 살갑지는 못해도 의지하고 있었다.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말 혼자가 되길 바란적은 없었다. 누구나 그랬듯이 진심으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단 한번도 이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친과 화진 둘 중 누군가 세상을 먼저 떠나게 된다면 그것은 화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된 시간을 꾸역꾸역 버텨온 모친의 삶의 흔적에서 누구보다 잘 살고싶은 마음이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화진의 모친의 심장은 갑작스럽게 멈춰버렸고 화진은 혼자가 되었다. 절망의 파도가 화진을 덮쳤다. 


왜 내가 아니고 엄마였을까.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엄마가 아니라 나여야 했다. 만약 모친이 혼자였으면, 부양해야 할 아이가 없었으면 새롭게 인생을 시작 할 수 있었을 것 이다. 화진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모친이 아닌 자신이 사라져야 했어야 했다. 남겨진이가 감당하기 버거운 고통은 떠난 사람에 대한 분노가 되었다. 


왜 내가 아닌걸까. 도대체 왜.


아무리 울고 소리쳐도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화진의 모친은 한줌의 재가 되어서야 그녀가 그렇게 바라던 푸르고 차가운 낙원에 뿌려졌다. 엄마가 바다에 뿌려지던 그날의 화진은 조금 많이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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