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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Nov 30. 2021

16 수신거부를 해제하다

- 내게 남은 과제를 위한 첫 걸음

누군가에게는 전화가 온다는 것, 벨소리가 울린다는 것이 심장이 울리도록 무서운 두려움일 수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졌는데 아침, 저녁 가리지 않고 수십 번을 계속 걸려오는 납부 독촉 전화.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지만 연인관계를 정리하지 못했을 때 울리는 그 여자, 혹은 그 남자의 전화.

직장 내에서 태움이라고 불려도 좋을 괴롭힘을 시전 하는 상사 또는 직장동료의 전화.

전화번호를 바꿔도 끊임없이 찾아내는 스토커의 전화.

이름만 가족이지 오히려 남이었으면 더 좋았을 가족의 전화.


휴대폰에 뜬 이름, 사무실 전화기에 찍힌 내선번호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는 사람들은 그 두근거림이 하루하루 반복되어 켜켜이 쌓이면 전화소리만 울려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쏟아내어 나를 휘저을지 한없이 두렵다.


알코올 중독자 아빠가 이런저런 사고를 칠 때 할머니를 비롯한 작은 아빠, 고모들, 아빠의 여자들까지 번갈아 나에게 전화를 하면... 그들이 쏟아내는 참담한 상황보고, 더 막중해진 나의 임무들, 더 이상 듣기도 싫은 위로 등이 범벅이 되어 가족이라는 이름 자체가 넌덜머리 나도록 듣기 싫었다. 화가 났다.

"그래도 아빤데 어쩌겠니? 그럴수록 네가 더 잘해야 한다."

"......"

그래서 한 때는 내 가족이란 가족은 모두 수신 거부해놨던 적이 있었다. 전화를 안 받으면 잠시 잠깐 마음은 편했으나 통화기록에 찍힌 수신 거부된 그 전화번호와 이름들을 보면 가슴속에 뜨겁게 달구어진 돌덩이 하나가 짓누르는 듯 괴로웠다.


수신거부를 했다가 해제했다가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을 하다가 최근에는 할머니와 아빠만을 수신거부 대상에 남겨놓은 상태였다. 할머니는 내 브런치 북 내용 중 <할머니는 아빠의  '믿는 구석'>이란 글에 쓰인 대로 아빠의 최측근 인물로서 내게 가장 막중한 고통을 가중시킨 인물이다. 아빠는 술 한잔에 시름을 잊고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살 뿐이지만 그로 인해 할머니와 나는 지칠 때로 지쳐 날카로워졌다.

할머니는 "나는 이제 모르겠다. 네 아빠니까 네가 데려가라." 하시고 나는 "할머니가 그렇게 키우셨으니까 할머니가 알아서 하세요."라는 무언의 저울질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최근 잠시 숨을 고르며 그동안의 일들이 꽤 고통스러운 담금질 과정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끝이 잘 될지는 모르겠으나 내 인생의 무게를 담담히 견뎌내며 칼이든 도끼든 만들어야 할 과제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그 첫 번째로 일단 할머니와 아빠의 전화 수신거부를 해제했다.


수신거부를 해제하다가 아빠에게서 온 마지막 전화기록을 보았다.

아빠는 나한테 사과를 한답시고 몇 달만에 전화했다던 그날에도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14번이나 전화를 했다. 참 우리 아빠답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나는 다짐한다.

불에 달궈지고 두드려 맞고 찬물에 빠졌으나 나는 더 견고해진 마음으로 담담히 내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아빠로 인해 내 인생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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