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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Dec 03. 2021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

- 나와 이웃들의 이야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

아파트 고층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하필 오늘 마트 앱으로 식료품을 배달시킨 바람에 배송기사님이 로비층에 물건을 놓고 가도 되겠냐며 전화를 하셨다. 아이 하교시간이 되었고 어쩔 수 없이 큰 배낭 하나를 메고 계단을 내려갔다.

일단 냉장고에 보관할 식료품부터 내 배낭에 옮겨 담았는데도 꽤 무거운 상자 하나가 덩그러니 남았다.

1시간 후에 또 학원을 가야 하는 아이와 함께 18층까지 계단을 올라갔다가 내려올 자신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아파트 단지 안을 배회하다가 키즈스테이션에서 시간을 때워보기로 했다.

창밖으로 아래층 할머니께서 손주를 데리고 들어가시는 게 보였다.

지난번 엘리베이터 점검일에도 무릎이 아파 올라갈 자신이 없다며 놀이터에서 한참을 계셨는데 오늘은 날씨가 추우니 계단 올라가기를 감행하실 모양이다.

30분쯤 지났을까? 혹시나 고쳐졌나 싶어 로비로 들어가는데 내려올 때부터 봤던 학생 둘이 엘리베이터 문 앞에 계속 서 있는 게 아닌가?

"계단 올라가기 힘들어서 기다리는 거야? 언제 고쳐질지 모르겠는데?"

"동생이 다리를 다쳐서 계단을 못 올라가요."

이제 보니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한쪽 발에 깁스를 하고 있다. 좀 더 관심 있게 아이들을 살펴봐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추운데 아줌마랑 같이 키즈스테이션에 가서 기다릴래?"

"괜찮아요. 이모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조금 뒤 그 아이들이 이모 차를 타고 떠나는 것을 보고 나는 아이를 학원에 보낸 후 식료품 배낭을 짊어지고 계단을 올라왔다.

집에 도착하니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허기가 졌다. 퇴근한 남편도 덩그러니 남은 나머지 식료품 상자를 들고 헉헉거리며 18층을 걸어 올라왔는데 그 상자가 족히 7~8킬로 그램은 넘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고장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난감하고 짜증 나고 불편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뿐이지만 우리의 모습은 참 다양했다.


세 살 아이를 업고 내려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하느라 3번 왕복에 다리가 풀렸다는 사람...

관리사무소에 다른 대안이 있는지 물어본 이는 옆라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을 통해 갈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했다.

그저 무던하게 운동삼아 계단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고쳐지겠지~ 하는 사람....

잦은 고장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는 사람...

고장이 계속 반복되니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가 겁이 난다는 사람..

수리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공개해달란 사람까지...


사고예방차원에서 점검을 해야 한다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기다려줄 일이다. 그리고 당장 불편함보다는 안전하게 고쳐지는 게 최우선이다. 목숨을 담보로 엘리베이터를 탈 수는 없다는 이웃님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반복되는 고장이 계속된다면 업체의 면밀한 검토와 적극적인 대응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1박 2일째 엘리베이터는 수리 중이지만 우리 가족은 지난가을부터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산책을 하거나 산행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실천 중이니 운동하는 셈 치자.


잠시 엘리베이터가 멈췄을 뿐인데 사람들의 다름을 보며 나를 바라본다.


너무 조급하지 않은가? '운전 중 신호등이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뀔라치면 나도 모르게 액셀을 밟는 게 습관처럼 됐다.'

양보하는데 인색한가? 손해 보는 걸 참을 수 없는가?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든다.'

불편한 게 싫은가? '아날로그보다는 최첨단이 최고! 언제부턴가 편한 것만을 찾게 되었다.'

너무 긴장되어 있지 않은가? '긴 시간의 힘듦 때문인지 작은 바람 한 점에도, 가는 빗줄기에도 나는 한없이 흔들린다.'


"조금 더 유연하게, 조금 더 너그럽게,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불편하게 살아보자."

이제는 좀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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