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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Dec 04. 2021

결혼해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 나는 지금도 키가 자라고 있나 봐.

스무 살에 처음 만나 서른 살에 결혼했고 지금 마흔 살이 되었다.

우리 부부의 이야기다.

결혼 10년 차... 친정엄마는 동갑내기 우리 부부를 보고 자주 티격태격한다고 말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 티격태격이 의견 조율의 과정일 뿐이다. 물론 우리도 부부싸움도 하고 가끔은 서슬 퍼런 냉전기간을 갖기도 하지만 이만하면 아이 둘 낳아 키우며 서로에게 큰 불만 품지 않고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부의 무난한 결혼생활 비결에 대해 물으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약간의 포기와 약간의 양보하는 마음을 항상 지닌다는 것이다.

가끔 외식이나 배달음식의 메뉴를 고를 때에도 약간의 포기와 양보하는 마음이 드러나는데 결혼해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 짜장, 짬뽕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가 나에게 "결혼해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 뭐예요?" 묻는 다면

나는 자신 있게 "결혼해서 짜장, 짬뽕을 원 없이 먹어봤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다.

"남편이 중국집 하세요?"

"아니요. 짜장, 짬뽕을 좋아해요. 떡볶이도요;;"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한 달이면 네 번 이상의 외식하는 날이면 나는 사실 안 먹어본 음식을 두루두루 먹어보자는 주의이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음식은 더 많지 않은가?

지난주에 짜장을 먹었으면 이번 주에는 초밥을 먹고, 다음 주에는 고깃집에 가고 싶다.

타코나 똠양꿍, 인도 카레 등 못 먹어본 음식들을 미션 마냥 하나씩 클리어하고 싶다.

세계여행은 못 떠나더라도 비행기 타지 않고도 그 나라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좋은 세상 아닌가?

하지만 지난주에 짜장을 먹었던 남편은 일주일이 지나면 짬뽕이 먹고 싶고 그다음 주에는 간짜장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메뉴 선정에 양보를 하고 나면 우리는 어김없이 중국집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인정하고 포기하며 양보하고 살다 보니 10년이 지났다.

그 10년의 결혼생활 동안 나는 키가 2센티 가까이 컸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하며 매년 건강검진을 할 때에도 키가 항상 제자리였는데 이상하게도 결혼하고 나서 키가 조금씩 자랐다. 0.5센티 정도는 오차일 수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다음 해, 또 다음 해 키를 잴수록 정말 미세하게 키가 자라고 있었다.

"여보. 나는 지금도 키가 자라고 있나 봐." 하고 말했더니 남편은,

"거봐라. 내가 널 이렇게 잘 먹여가지고 키가 크는 거잖니? 꽃샘추위! 너 남편 잘 만난 줄 알아라."하고 거들먹댔다.

"그래... 짜장, 짬뽕 많이 먹여줘서 고맙수!"

여자들은 아이를 낳으면 뼈마디가 늘어나서 키가 조금씩 큰 다던 시어머니의 말씀이 맞을 수도 있다.

뜻하지 않은 나의 성장 소식(?)을 전해 들은 친정엄마가 "그래, 한창 클 때 너무 없이 살아서 잘 못해 먹여서 그랬나 보다." 한숨지으신 것처럼 정말 성장기 때 못 먹어서 덜 컸던 키가 마저 자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나는 남편을 잘 만났고, 다음번 건강검진 때에도 키가 조금 자라 있다면 좋겠다.

하루하루 잘 먹고 잘 크고 잘 살아야지.

짜장, 짬뽕은 조금 덜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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