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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Feb 26. 2022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20 캄캄한 터널 속에서 길을 잃었다. 우리 모두

종합병원에 가면 긴 투병생활에 지친 피로 가득, 푸석한 보호자들의 모습이 내가 겪어야 할 미래인 듯 느껴졌다.

언젠가는 뻐끔뻐끔 숨만 겨우 쉬며 병상에 누워 있게 될지도 모를 아빠의 미래를, 병간호에 지칠 나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렇게 밥을 안 먹고 술, 담배만 몸에 넣어주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칫솔을 물고 쓰러져 손발이 꼬부라져갔던 아빠를 다시 살려주신 하늘이 언제가 분명 큰 벌을 내리실 것 만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간절한 생명의 온기를 다시 불어넣어 주신 하늘도 삶을 놓아버리려는 아빠를 보며 나처럼 무척 화가 나있겠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겠지.


다시 아빠를 찾았던 날에도 아빠는 찰랑찰랑 술이 가득한 눈을 하고는 다리를 절뚝이며 담배를 사러 편의점을 가신다고 했다.

노모의 주머니에서 받아낸 꼬깃꼬깃 구겨진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받아 들고....


할머니는 증손주들(나의 딸들)에게 세뱃돈으로 주려고 아빠 몰래 잘 숨겨놓았는데 어디에 넣어두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고 했고,

나는 술, 담배를 사는데 가진 돈을 모두 쓰는 아빠에게 용돈 한번 드릴 수 없었다.

며칠 뒤로 다가온 아빠의 예순 생일을 생각하며 마른미역과 소고기 한 덩이와 아빠가 좋아하는 생크림빵을 사 가는 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기나긴 가정폭력에 배우자, 혹은 부모를 살해한 패륜 범죄가 남 일 같지 않았다.

............

나는 범죄자로 남겠지만 더 이상의 고통은 없겠지

............

하.... 나에게는 가족이 있다.

빨갛게 타들어가는 담배를 입에 물고 꼬부라져 잠들다가 산 밑에 허름한 그 집이 홀랑 불타버리는 건 아닌지 그 집에 지친 몸을 뉘인 세 사람이 잘못될까 두렵다.

아빠는 몇 살까지 사실까?

어떻게 돌아가실까?

허름한 집 세 식구 중에 누가 먼저 가시고 누가 남으실까?


그 후로도 아빠는 캄캄한 터널 속을 꽤 오래 비틀거리며 걸으셨다.

만난 지 4~5년을 훌쩍 넘긴 둘째 딸(내 동생)에게 부재중 전화를 연거푸 찍어놓고는 꼬부라진 혀를 하고 음성 녹음을 남기셨더라고 동생은 나한테 눈물지으며 전화를 했다.


아빠는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 걸까?

아빠는 본인의 생을 어찌하실 셈인가?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겠어?

우리가 아빠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어

지금 걱정하고 눈물지어봤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잘 살아내자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몰라

 우리가 하고 싶지 않아도 어찌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말 테니.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 다가오면 그때 우리의 일을 하자.

내가 너무 힘들면 그때 너에게 도움을 청할게

그때 너는 날 도와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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