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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Mar 19. 2022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21 알코올중독과 두번째 입원

2017년 알코올 전문병원에 첫 입원을 하고 100일가량 병원에서 지내다 퇴원한 후 아빠는 얼마 전 두 번째 입원을 하셨다.(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으면 사람이 된다던데...)

그 후로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빠는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입원 고민을 하게 만들었고 이렇게 코로나 시국 속에 입원하기 까지는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https://brunch.co.kr/@c6979acfaf824d1/12


2022.2.24(목)

입원시켜야 할 것 같다는 고모의 전화를 받고 나는 입원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Q: 가장 중요한! 입원가능한 병실이 있는지?부터 묻는다- 연령과 성별을 말해준다.

Q: 야간에도 입원이 가능한지? - 24시간 가능한 병원이 있는 반면 진료시간만 가능하다든지 입원을 받는 요일과 시간을 정해둔 병원이 있다.

Q: 코로나 검사를 해주는지? - 어떤 곳에서는 24시간 내에 발급된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직접 떼오라 요구하기도 한다.

Q: 필요한 구비서류는 무엇인지? - 입원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서류와 동행할 보호자의 명 수가 다르다.

Q: 입원 준비물은 무엇인지? - 나는 몇 년째 아빠의 입원 가방을 꾸려놓고 대기해놓았던 상태이다

Q: 강제 이송을 대비해 사설 응급차를 소개해달라고 한다 - 이송업체를 알아보는 것도 일이니 병원에 부탁하면 번호를 대부분 알려준다.


2022. 2.27(일)

입원 디데이 전날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 상태를 확인한 후 작전을 계획한다.

불과 며칠 전에도 아침부터 꼬부라진 혀로 전화를 해댔던 아빠가 요 며칠 술을 안 마셨는지 덜 마셨는지 어느 정도 정신이 있는 상태다. 조금 당황했지만 좋은 말로 아빠에게 입원을 권유해 본다.언제나 그랬듯이 괜찮다. 나는 아픈 데가 없다. 이렇게 살다 끝나버리는 거지. 체념 가득한 대답이 돌아온다.오케이~~ 본인 발로 갈 의지는 없으시구나. 보호자 2명이 필요한 강제(보호) 입원을 하기로 결정하고는 더 이상 입씨름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2022.2.28(월)

입원시키기로 했던 병원에 몇 시까지 모시고 갈 거라 이야기를 해둔 후 혹시 맨정신에도 입원이 가능한지 물었다. 이미 입원 상담 때 아빠의 신체 징후들을 설명했기 때문에 모시고만 온다면 입원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송업체에 맡겨봐야 한다.

병원 상담 때 받는 이송업체 번호로 전화해서 같은 지역 내 이동이고 키는 크지만 식사를 안 하셔서 몸무게가 50킬로 초중반 밖에 안된다고 어필해 봤다. 하지만 경찰이라도 출동해있는 상황이 아닌 이상 자기 혼자 맨정신인 사람을 이송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인권보호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어쩔 수 없지. 정면 승부다! 할머니 집으로 가서 그동안 아빠가 저지른 새로운 만행 몇 가지를 전해 듣고는 아빠에게 가서 병원에 입원합시다! 했다.독한 담배 냄새로 쪄든 방에서 아빠는 쪼그려 앉아 담뱃불을 끄며 앵무새 같은 대답 레퍼토리를 늘어놓으셨다.으~~~~~~~~~부글부글 화가 나지만 예측한 결과다. "아빠가 아빠 노릇을 안 하면 딸도 없으니 그리 아세요!!" 하고는 방문을 닫고 나왔다.

할머니께는 아빠가 술을 마시고 꼬부라져 있을 때 다시 와서 입원시킬 테니 며칠만 더 참으시라 이야기를 했고 할머니는 술을 짝으로 사다 주고 실컷 먹으라 해야겠다며 허허 웃으셨다.


그럼에도 이날 아빠를 입원시킬 수 있었다.

할머니와 다음 작전을 기약하며 돌아서려는데 아빠가 주섬주섬 외투를 입고 나오셨기 때문이다.

최근 아빠가 잠을 잘 못 자서 일반 병원에서 수면제를 타다 먹었는데 약이 다 떨어졌다는 첩보를 들은 나는 작전을 바꿔 병원에 수면제를 처방받으러 가자고 설득했고 아빠는 그러겠노라 하며 따라나서셨다.일단 아빠를 의사에게 보이고 정말 약만이라도 처방받아 올 생각이었다.


아빠를 모시고 간 병원은 정신병원이었고 아침인데도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꽤 북적이고 있었으며 원무과에서는 초진은 접수가 끝났다며 우리를 돌려보내려고 했다.나는 다급하게 오늘 입원하기로 한 환자라고 작게 속삭였다. 우리는 다행히 원무과에서 접수를 받아줘서 진료를 기다릴수 있었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사회복지사랑 상담을 하고 그 사이 간호사는 내게 와 아빠를 입원시킬 생각이냐고 물었고 환자는 안 하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입원을 시키고 싶다고 속삭이듯 전했다.전화 상담을 해주셨던 남자분과 아빠와 나는 테이블 한편에 앉아 의사를 만나기 전 최종 상담을 했다.

아빠를 보더니 "선생님 눈 상태가 굉장히 안 좋습니다. 지금 간에 상당한 무리가 가 있는 상태인 것 같은데 입원해서 검사를 받으셔야겠는데요?"하고 한마디 툭 던진다.

나는 티키타카.."아빠! 피검사를 해야 아빠 몸 상태 검사가 되는데 그건 하루 입원을 해서 해야 한대. 병원까지 왔는데 이참에 검사받고 갑시다" 아빠는 뭐 예상한 대로 다시 앵무새가 되었다.

상담직원은 연거푸 아빠를 설득하는 나를 보고는 "따님 플랜 B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하며 눈짓을 건넨다.아~ 병원에서 입원을 받아주려나 보구나.의사한테 아빠를 보이고 약이라도 타오고 싶었던 내 마음은 입원을 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두근거림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멀쩡한 진료실을 두고 아빠와 나는 복도 구석에 놓인 책상 한편에 불려가 앉았다

그리고 은빛 머리에 카리스마를 풍기는 중년의 여자 의사선생님이 오셨고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아빠는 환갑이 되지도 않았는데 귀가 먹었다.

"환자분 어떻게 오셨습니까?"

"제가 술을 많이 마셔서 왔습니다."

"모자를 벗고 저를 보십쇼."

"눈이 술을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마시는 심각한 알코올중독환자들에게서 보이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소리도 잘 못 들으시고 제가 보기엔 인지장애도 있으신 것 같은데 입원을 하셔야 합니다. 환자분 입원에 동의하십니까?"

"네"

"몇 가지 피검사를 하고 환자분의 건강 상태를 먼저 체크해 보겠습니다. 환자분은 간호사 따라가시고 보호자님은 절 보고 가십시오"


그렇게 아빠는 얼떨결에 일사천리로 두 번째 입원을 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의사의 진료실로 들어간 나에게 선생님은 "술은 산 사람이 끊는 겁니다. 아버님은 지금 신체 징후들이 무척 안 좋습니다. 일단 숨통을 좀 이어놓고 다음 얘기를 합시다"이렇게 얘기를 하셨다. 아빠는 지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라 했다.

심각한 알코올중독은 물론 그동안 돌보지 않아서 생긴 신체적, 내과적 문제들..

반복된 낙상으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뇌출혈이 있을지도 모를 상태이며

우울증과 알코올성 치매가 동반된 정신적 문제들과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통제불능인 상태까지...전반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급사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약간의 과장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으나 의사의 판단이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두 달 전 아빠의 술 친구도 할머니 집에 놀러와 얹혀살다시피 밥을 며칠 얻어먹고는 아빠 곁에서 쓰러졌다 했다.잘 먹은 밥을 마당에 갑자기 토해놓고는 아빠의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구급차에 실려가 혼수상태로 며칠을 병원에 있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아빠는 본인 동의로 입원을 한 동의 입원을 했으며 3일 이내에 아빠가 퇴원을 요구할 시 다른 보호자 1명이 또 와서 사인을 해야 강제(보호) 입원의 형식으로 입원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아빠가 입원에 동의를 해줘서

병원 직원들이 신속하게 입원 수속을 마쳐줘서

너무나도 감사했던 날이다.


병실 간호사가 나한테 "몇 살이세요?" 묻는다.

"아버님이 따님이 스물일곱이래요. 제가 보니 그 정도 나이는 아니신 것 같은데...."

(마흔이 넘었습니다만....)

"집에 계신 것보다 저희 병원에서 더 잘 해드리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네... 병원에 계신 것만으로도 정말 안심입니다....정말 다행입니다...)


                                                                                   202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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