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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Sep 27. 2022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34 그 여름, 너의 결혼식


서른 살 나의 결혼식.


혼주석 아빠 옆에 앉으신 분은 아빠의 두 번째 아내였다. 아빠에게 부인이 있다는 이유로, 자식을 버리고 가버린 친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엄마는 내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첫아이가 태어났고 돌 잔칫날에는 아빠 옆에 또 다른 여자가 자리했다. 인생의 뜻깊은 순간, 지금은 없는 아빠의 과거 속 여자들이 함께 찍혀버린 사진이란... 도려내고 싶은 흉터만을 남기고 두고두고 상처가 됐다.

그래서 하나뿐인 동생의 결혼식을 앞두고는 사진으로 나마 온전한(?) 가족사진을 한 장쯤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위해 그날 하루는 아빠가 온다면 눈 딱 감고 같이 혼주석에 앉는다 했고 나는 동생의 소중한 순간이 나처럼 아픈 남은 사진으로 남지 않기를 바랐다. 결혼식 참석을 위해 아빠의 퇴원일을 결정하려 의사와 면담을 한 그날, 의사는 아빠의 인지저하와 치매 증상을 얘기하며 하루 중 몇 시간 아빠 노릇을 하라면 할 수 있겠지만 돌발 상황이 생겨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경고를 했다. 하객들 앞에서 어떤 창피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아빠가 더 이상 회복 불가능이라는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괴로웠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빠가 이미 바닥까지 왔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가족들이 아빠의 상태를 인정해야 하는 아픈 순간이었다.


폐쇄병동에 입원한 아빠와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생 사이에서 아빠의 퇴원일을 언제로 하면 좋을지, 결혼식에 과연 참석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렇다면 청첩장에 아빠의 이름을 넣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지난 몇 달간 끊임없이 해 온 고민들은 다 부질없는 짓들이 되었다. 아빠는 결혼식 참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의 상태를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더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결혼식에는 모시지 않기도 결정했다. 입원을 유지하며 방법을 모색해 보기로 했고 결국 동생 또한 온전한 결혼식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혼식 당일 아침, 가족들은 아직 단잠에 빠져있을 때 혼자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동생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 나보다 여덟 살이 어린 동생은, 활활 불타오르는 가정불화를 겪으며 각자 있는 그곳에서 함께 두렵고 슬픈 유년 시절을 겪었다. 아니 나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고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은 우리 아프지 말자고, 앞으로 행복한 우리의 삶을 살자고 이야기했다. 나보다 감당하기 더 어려웠을 동생의 어린 시절을 글로나마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아빠를 감당하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 미안함을 갖지는 마라고 당부했다. 우린 각자 주어진 인생을 잘 살면 되는 것이고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 볼 것이라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겠다는 말로 동생이 부담감을 조금 덜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2011년 나의 결혼식..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그날의 아빠는 꽤 멋진 모습이었다.


내 손을 잡고 아주 작게 떨리던 아빠 손의 미동을 기억한다.




2022년 너의 결혼식..


이제껏 내가 본 신부 중에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큼성큼 너는 웃으며 입장했지.


양가 가족들이 신랑신부 옆에 서서 가족사진을 찍을 때 고모가 너의 뒤에 서서 아빠의 인사말을 전달하는 바람에 너는 겨우 울음을 삼켰다고...



"우리 딸 결혼 축하한다. 예쁘게 잘 살고 건강해야 돼. 행복해야 돼."


끝도 없이 퇴원을 바라며 고모에게 전화를 한 와중에도 그렇게 한 마디 해주었다고 하니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아빠한테 고맙고 미안하다. 그렇게 또 우리에게 아픈 사진 한 장이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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