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56 겨울밤의 꿈

by 꽃샘추위
오랜만에 꿈에 아빠가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가족들과 아빠가 함께 있는 꿈.



시끌벅적. 떠들썩한 분위기.



아빠는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슬리퍼를 신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대다가 슬리퍼 두 짝은 주인을 잃고 내팽개쳐졌다.



할머니가 몸의 중심도 못 잡고 이리저리 꼬꾸라지는 아빠를 보며 걱정의 말을 한마디 내뱉자,



나는 날을 무섭게 세워

할머니가 술을 줬기 때문이라고 쏘아붙였다.

꿈이지만 가슴속에 팽팽하게 겨우 붙잡고 있던 활시위를 놓아버린 기분이다.

활과 함께 가슴도 통째로 떨어져 나간 듯이 눌러두었던 화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위기.



그러고도 분에 겨워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헝클어진 채로 주저앉은 아빠가 갑자기 많은 양의 피를 토했다.

감싸 쥔 아빠의 두 손 손가락 사이로 감당하지 못할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내렸다.



가슴이 쿵 내려앉더니 미친 듯이 빠르게 뛰었다.



너무 놀라 깨어보니 새벽 5시 30분.



무서운 꿈이다.


요 며칠 아빠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쉴 새 없이 밀려왔다.

편안한 집에 모시지 못한 죄책감.

따뜻하고 좋은 집에서 다리 뻗고 잠을 잘 수가 없다.

낡고 구멍 나고 무거운 아빠의 겨울 잠바가,

삼겹살이 먹고 싶다던 아빠의 한마디가

나의 일상을 무겁게 끌어당긴다.



그럼에도 편안한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지 못할 아빠를 알기에

퇴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

아빠가 느낄 자괴감과 깊은 상처마저도

모두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아빠가 그나마 노력이란 걸 해보려고 했던 그때에...

버티다 주저앉은 그때에...

또 그럴 줄 알았노라고 아빠는 구제불능이라고 소리쳤던 그때에...

병원을 한 번이라도 더 모시고 갔더라면....



아빠의 인생은 아빠가 결정했고 아빠가 사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어쩔 수 없는 아빠의 인생으로 인해,

한없이 마음이 괴롭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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