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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시작과 끝. 허은실.

by Cold books

[책리뷰]



허은실 시인을 알게 된 건

'이동진의 빨간책방'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는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고,

느낌표가 물음표로 바뀌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공간과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공간 속에서 허은실 작가는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어느덧 모르게 다가와 있는 봄바람 같았습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일상에서 정작 그리운 것은

허은실 작가의 오프닝이었습니다.


마음이 쓰였던 오프닝은

몇 번을 돌려 들으면서 메모하면서,

오프닝만 모아놓은 콘텐츠가 있어도

빛이 나겠다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종영과 동시에

조금은 희미해져갔습니다.


최근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리뷰를 보면서,

다시 한번 그때가 떠올라 찾아보니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이 나오더라고요.


참 다들 빨간책방에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은실 시인의 시는

따뜻함과는 조금 다른 포근함입니다.

어떨 때는 따뜻함도 너무 직접적일 때가 있으니까요.


시인이라 함은 직접 관찰하고 느낀 것을

표현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허은실 시인은 기존에 정량화된 자연의 행동들을 시작으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가 많아 매력적입니다.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 뭍을 향해 온다는 표현,

벌은 1킬로그램의 꿀을 얻기 위해

500만 송이의 꽃을 찾아다닌다는 표현이 그러한데요.

팩트와는 별개로

기존 시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문이과 융합적인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을 다 읽어갈 즈음에 크게 감탄한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허은실 시인의 시는 편집적이지 않고,

키치(Kitsch)적이지 않습니다.

시 전체가 한 번에 들어오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편집적인 이해와 강조가 아닌

수용의 과정에서도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기 전에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오프닝을 실제로 듣고 허은실 시인의 음성을 들어보길 권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음성지원 되는

나에게만 들리는 책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쓰였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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