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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hail Feb 10. 2020

120만 반려인 시대

#파뮬러스_이야기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는 많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반려인이라는 말도 생겼다.

'반려인'. 이전에는 애견인 또는 애묘인 등으로 불리던 단어를 '반려인'이라 부르니 훨씬 좋아 보인다.


모 신문사의 기자님께서 2016년 온라인 가나다(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질문을 남기셨다.

'... 동물을 대상으로 한다면 '반려인'이라는 표현과 '반려자'라는 표현 중 무엇이 맞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답변은 이렇다.


'안녕하십니까?

제시하신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조어한 '반려인, 반려자'는 어법적으로 성립될 수 있습니다.

다만, '반려인, 반려자'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인식('사람'을 기준으로 함) 아니므로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또한 사전에 '반려자'가 '짝이 되는 사람'으로 뜻풀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반려견, 반려묘' 등의 상대적 의미로 '반려자, 반려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해석을 하자면 '반려'가 동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아니라는 뜻이다.

문득 반려동물이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사람은 12% 밖에 안된다는 동물 자유연대 조사 결과가 생각난다.


반려(伴侶)는 짝 '반'자에, 짝 '려'자를 쓴다. 짝 반(伴) 자는 사람의 '절반'이라는 뜻이고, 짝 려(侶) 자는 사람에게 뼈처럼 붙어있는 관계를 나타낸다. '꼭 붙어 있는 내 반쪽'. 우리는 누군가에게 남편이나 아내를 소개할 때에 "이 사람이 내 '반려자'입니다."라고 소개한다. "내가 이 사람의 반려자입니다."라고 먼저 말하는 것은 왠지 어색하다. '반려'라는 관계는, 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정의되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인정하지 않는 일방적인 '반려'도 있다. 인간 세계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지만, 동물과 반려인 사이에는 자주 나타난다.

여기서 '반려'의 조건 첫 번째가 나온다.

1) 상대방이 나를 '반려인'이라고 정의해주어야 내가 상대방의 '반려인'이다.


a) 11년 사귄 커플이 있다. 아름답게 사귀다 헤어지고, 그들은 각기 다른 사람과 만나 서로의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다. 이 커플은 서로를 추억하겠지만, '반려자'는 아니다.

b) 사랑한 지 9년에 이르는 노년 커플이 있다. 전 남편과 전 부인과 헤어지고, 짧다면 짧은 9년간 사랑을 하다, 같이 생을 마감한다. 법적 부부도 되지 못한 이 노부부는 각자의 세월에서 서로가 차지하는 부분이 아주 짧다. 늙은 몸으로는 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반려자'라고 부를 수 있다.


둘의 차이는 '시간'이나 '결혼'따위가 아니다. 젊어서 한 사랑이 늙어서 한 사랑보다 열정적인지 따질 수도 없으니 만난 시점에 대한 것도 아니다. 남은 날들을 누구와 함께 보냈느냐. 이 정의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반려자는 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반려'의 조건 두 번째가 나온다.

2) 상대방의 남은 날(伴)들을 함께(侶) 해야 '반려'다 : 곧, '그 혹은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해야 반려다.


1),2)가 모두 채워졌다 하더라도 진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한쪽만 진심이 아닌 경우도 있고, 두 쪽도 진심이 아닌 경우도 있다.

이건 '함께'가 아니다. 몸은 같이 있어도 마음이 다른 곳에 있으면 함께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몸보다는 마음이 함께 있으며, 행복한 상대방을 위해(행복한 서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게 '반려'의 마지막 조건이다.

3) 행복한 상대방을 위해 노력해야 '반려'다.


1983년 10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처음으로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애완동물에는 동물이 사람의 즐거움을 충족시킨다는 의미가 들어있다는게 주된 이유였다.

1998년, 내가 7살 때 잠시 살던 시골집 근처에는 줄에 묶인 검정색 도사견이 있었다.

내 몸집보다 크고 뚱뚱했던 도사견은, 언제나 주인아저씨의 잔반을 먹었다.

나는 불쌍한 마음에 멀찍이서 불량식품 몇개를 던져줬었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 놀러간 시골에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저씨는 뒷산에 묻어줬다고 슬픈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우리 할머니께서는 도사견이 죽기 일주일 전부터 주인아저씨가 집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었다고 그러셨다. 잔반을 먹던 도사견은, 아저씨의 마음을 먹어서 배가 불렀나보다.


우리 중 88%는 '반려인'이 아니다.

매스미디어에 나오는 [1,000만 반려인 시대]는 웃기는 소리이고, 우리는 잘 쳐줘야 [120만 반려인 시대]에 겨우 살고 있다. 미안해서 사주는 장난감과 간식 하나로 반려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없다,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파양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생각은 틀렸다. 반려동물들은 대부분 인간보다 수명이 짧다. 인간이 반려동물의 반려인이 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반려동물들은 소리 나는 장난감과 간식보다 당신을 더 원한다. 우리가 반려인이 되기에는 사랑, 책임, 고민이 충분하지 않다.


1) 상대방이 나를 '반려인'이라고 정의해주어야 내가 상대방의 '반려인'이다.


2) 상대방의 남은 날(伴)들을 함께(侶) 해야 '반려'다 :

                                      곧, '그 혹은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해야 반려다.


3) 행복한 상대방을 위해 노력해야 해야 '반려'다.


어렵게 보여도, 누군가는 지켜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반려인이 많지 않은 반려인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진심으로 반려동물을 대하는 120만명 처럼 우리들 또한 반려인이 될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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