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여유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언제 여유로웠을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 기억 속 나의 여유는 중학생이 마지막이었던 듯하다.
여유롭다는 건 무슨 뜻일까?
한자 풀이는 이렇다.
남을 여 餘 : 밥 식(食)과 나, 남다 여(余) = 밥을 먹고도 남아돈다.
넉넉할 유 裕 : 옷 의(衣)와 골짜기 곡(谷) =옷을 입을 때는 골짜기처럼 여유로워야 한다.
그래서 여유는 '남음'에서 오는 감정이다.
'남는다'는 것은 '주어진 것'을 다 '쓰고도' 남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남기 위해서는 '주어진 것'이 있어야 한다.
그리서 남기 위해서는 '쓰는 것'이 있어야 한다.
'주어진 것'은 제한된 것이다.
주어진 것이 제한되지 않고 무한해 [공기]와 같다면 우리는 여유를 느끼지 못한다.
숨을 쉬며 공기에 여유를 느끼는 사람을 보았나?
그것은 '남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유를 느낄 수 없다.
'주어진 것'을 어딘가에 '쓰기' 위해서는 목적/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어진 것을 '쓸 수 있다'
'주어진 것'을 '올바른 곳에 쓰지' 않고 낭비한다면 아무리 남아도 떳떳할 수가 없다.
여유를 느낄 수가 없다.
'올바로 쓰려면' 그래서 올바른 목적/목표가 있어야 한다.
나는 중학생 때 어떻게 '여유'를 느꼈을까?
공부라던가, 선출이라던가, 고등학교 입학이라던가 하는 나름의 목적을 이뤘기 때문이었을 거다.
방학 때는 방학의 느낌대로.
학교와 학원에서는 그 나름의 느낌대로.
딱히 노는 시간은 없었지만 내 나름의 여유를 하루에 한두 시간이라도 느껴가며
내 시간을 썼던 것 같다.
그래서 재미있었고, 쉴 때도 별다른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올해로 만 28세.
별로 의미 없는 말이긴 하지만,
100년 전 만해도 상투를 튼지도 한참 되었을 나이다.
꽤 이른 나이에 나름의 사업을 하고,
꽤 이른 나이에 나쁜 의미로도 좋은 의미로도 괜찮아진 나인데
나는 불안하기만 하다. 여유롭지 못하다.
중학생 때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당연하지만)
중학생 때보다 할 수 있는 게 더 많고 (당연하지만)
중학생 때보다 더 멋있어졌고 (당연하지만)
중학생 때보다 유명해졌고 (당연하지만)
중학생 때보다 더 똑똑하고 몸이 좋아졌고 (당연하지만)
중학생 때보다 어쩌면, 내 시간이 더 많은데 (당연하지만)
나는 중학생 때보다 행복하지 못하다.
그건 지금의 자율성, 흐릿한 목표 때문이지 않을까.
내 삶의 목표는 뭘까?
내가 내 삶이라는, 내 하루라는 (24시간으로 제한된) '주어진 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그 목표'는 무엇일까?
8월은 그것을 찾아나가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찾지 못하더라도
100년 중 한 달. 인생의 0.08%라도 나 스스로에게 그런 여유를 갖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