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로 읽는 디자이너의 진화 1.0
1982년 12월, 존 워커(John Walker)와 12명의 프로그래머들이 5만 9천 달러를 모아 오토데스크(Autodesk)를 설립했던 그날은 설계 도구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첫 선을 보인 오토캐드(AutoCAD) 버전 1.0은 개인용 컴퓨터, 특히 IBM PC에서 실행할 수 있는 최초의 CAD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당시 대부분의 설계 소프트웨어는 메인프레임이나 미니 컴퓨터에 연결된 그래픽 터미널에서만 작동했기에,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설계 도구를 제공한다는 것은 혁신 자체였다. 이 작은 시도가 오늘날 전 세계 설계 업계의 표준 도구로 자리 잡기까지의 여정은 기술 진화와 사용자 요구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다.
오토캐드의 초기 버전들은 지금의 화려한 기능들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82년 12월 버전 1.0에서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의 릴리즈들은 선(Line), 폴리라인(Polyline), 원(Circle), 호(Arc), 문자열(String)과 같은 기초적인 객체들만을 지원했다. 복잡한 형태를 표현하려면 이러한 원시적인 요소들을 조합하는 방식밖에 없었다. 1983년 4월의 버전 1.2, 1983년 8월의 버전 1.3, 그리고 1983년 10월의 버전 1.4가 빠르게 연속 출시되었으니, 개발팀이 얼마나 급박하게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1985년 오토데스크는 주식을 공개했고, 1986년 중반에는 직원 수가 255명으로 증원되었으며 연 매출이 4천만 달러를 넘었다. 이 시기 존 워커는 회사의 회장 겸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프로그래머로 복귀했는데, 이는 기술을 사랑하는 그의 순수한 동기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오토캐드는 C++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통해 더욱 고급스러운 객체(Object) 지원을 시작했고, 이는 제3자 개발자들이 오토캐드를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오토캐드의 기본 파일 형식은 처음부터 DWG(드로잉, Drawing)였지만,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토데스크의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DXF(교환 파일 형식, Data eXchange Format)는 다른 CAD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을 위해 개발되었고, 이 개방형 형식이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이 되면서 오토캐드의 생태계가 빠르게 확장될 수 있었다. 2006년 오토데스크는 사용 중인 DWG 파일의 수가 10억 개를 초과할 것이라 예측했는데, 이는 오토캐드가 산업 전체에 얼마나 깊게 뿌리를 내렸는지를 상징한다.
초기에 오토캐드는 마이크로소프트 데스크톱, 매킨토시 운영체제에서 실행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유닉스 버전도 출시되었다. 다만 매킨토시용 버전은 1990년 이후 한동안 지원이 끊겼다가 2012년에 놀랍게도 다시 복귀했고,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지원되고 있다. 유닉스 버전은 나중에 지원이 완전히 중단되었지만, 오토캐드는 버추얼 PC(Virtual PC)나 와인(Wine) 같은 에뮬레이터 및 호환성 계층에서도 실행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다만 3차원 객체나 매우 큰 도형을 다룰 때는 성능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국제적 확대도 주목할 만한 요소다. 오토캐드와 라이트(LT) 버전은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일본어, 한국어를 포함해 무려 18개 언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브라질 포르투갈어나 체코어, 폴란드어, 헝가리어 같은 언어들도 추가되었으니, 오토데스크가 세계 시장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했는지 알 수 있다.
오토캐드의 버전 역사를 살펴보면, 초기의 단순한 버전 번호 체계에서 출발했다. 버전 2.0(1984년 10월), 버전 2.1(1985년 5월), 버전 2.5(1986년 6월), 버전 2.6(1987년 4월)이 나왔고, 릴리즈 9(1987년 9월)부터 릴리즈 14(1997년 2월)로 이어졌다. 1999년 3월 오토캐드 2000의 출시는 하나의 전환점이었는데, 이때부터 버전 명칭이 연도 기반으로 변경되었다. 오토캐드 2000, 오토캐드 2000i(2000년 7월), 오토캐드 2002(2001년 6월)가 그 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오토캐드 2004(2003년 3월)였다. 이 버전에서는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대폭 개선되었고, 데이터 입력 프로세스가 자동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5년, 2006년, 2007년 버전들이 연년 출시되었으며, 2007년 버전에서는 3D 설계 및 개념 설계(Conceptual Design) 기능이 대폭 강화되었다. 이는 오토캐드가 2차원 제도 도구에서 3차원 설계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중요한 단계였다.
2010년 이후 오토캐드는 매년 새로운 버전을 출시하는 정기적인 주기에 진입했다. 오토캐드 2010(2009년 3월), 오토캐드 2011(2010년 3월), 오토캐드 2012(2011년 3월)가 그것이다. 2013년부터는 3D 모델링 기능이 더욱 강력해졌고, 사용자들이 단순한 선 기반 도면 작업에서 벗어나 입체 설계(3D Solid Design)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오토캐드 2015의 3D 메뉴얼과 강좌들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이제 일반 설계자들도 복잡한 3D 모델링을 접근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오토캐드의 리본 메뉴(Ribbon Menu)는 탭 기반으로 정리되어 사용자의 작업 흐름에 맞게 도구들을 구성했다. 홈 탭(Home Tab)에는 가장 자주 사용되는 도형 그리기 명령어들이, 모델링 탭에는 3D 객체 생성 명령어들이 배치되었다. 이러한 인터페이스 구성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디자인 철학에 영향을 받았으며, 사용자 경험을 크게 향상시켰다.
오토캐드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변화 중 하나는 클라우드 기반 버전의 도입이다. 처음에는 오토캐드 360 모바일 앱(AutoCAD 360 Mobile App)이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도면을 보고 간단히 편집하는 기능을 제공했다. 이후 오토캐드 웹(AutoCAD Web)이 등장하면서, 사용자들은 웹 브라우저만으로 도면을 열고, 보고, 작성하고,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크롬, 파이어폭스, 엣지(Edge) 같은 다양한 브라우저에서 접근 가능해진 이는 혁신적이었다.
오토캐드 웹은 오토데스크 클라우드 드라이브, 도움, 또는 주요 클라우드 저장소 공급자(구글 드라이브, 드롭박스 등)에서 직접 파일을 열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처음에는 완성도가 낮았지만, 약 10년간의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데스크톱 버전과의 격차가 상당히 좁혀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웹 버전에서도 자동 프로그래밍 언어(AutoLISP)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설계 자동화의 영역까지 웹으로 확대된 것이다.
2023년 오토데스크는 오토데스크 AI(Autodesk AI)를 공식 선언했다. 이는 회사의 모든 설계 및 제조 플랫폼에 인공지능 기능을 기본 탑재하겠다는 전략적 선언이었다. 설계부터 생산까지의 전체 워크플로우에서 사용자가 창의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반복적인 업무는 AI가 처리하는 방식을 취했다.
2024년 오토캐드에는 스마트 블록(Smart Blocks)이라는 기능이 처음 도입되었다. 이 기능은 사용자의 도면을 학습하여 블록을 배치할 때 배치 형태를 제안해주고, 블록을 교체할 때 유사한 형태의 블록을 자동으로 찾아주었다. 매크로 어드바이저(Macro Advisor)는 사용자의 작업을 추적해 자주 반복되는 작업들을 자동으로 하나의 기능으로 만들어 제안하는 방식으로 설계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
2025년 오토캐드는 이러한 AI 기능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스마트 블록의 검색 및 변환(Smart Blocks: Search and Replace) 기능은 선택한 형상의 여러 인스턴스를 자동으로 블록으로 변환할 수 있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객체 탐지(Object Detection) 기술이었다. PDF 파일이나 외부에서 불러온 도면 파일의 경우 기존에는 블록화가 정상적으로 되지 않았는데, 머신 러닝을 사용한 이 기능이 객체들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블록 처리를 해주었다. 활동 정보(Activity Insights)는 2024년부터 도입되어 도면에서 일어난 모든 변경 사항을 기록하고, 2025년에는 더 많은 유형의 활동을 기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