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TrueType Fonts>

툴로 읽는 디자이너의 진화 1.0

by 콜드포인트

1980년대 후반, 컴퓨터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글꼴 기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어도비(Adobe)는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 기술로 글꼴 시장을 독점하려 했고, 애플(Apple)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어도비의 막대한 로열티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트루타입이라는 혁신적인 글꼴 기술이었다.


혁신의 시작: 1987~1991년

1987년부터 애플에서 개발을 시작한 트루타입은 처음 코드명 '베이스(Bass)'와 '로열(Royal)'로 불렸다. 프로젝트의 핵심 개발자 삼포 카아실라(Sampo Kaasila)는 1989년 8월 트루타입의 핵심 엔진을 완성했다. 당시 여러 경쟁하는 글꼴 스케일링 기술들이 있었지만, 트루타입은 성능과 렌더링 품질로 우수성을 입증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적 동맹이 1989년 9월 공식화되었다. 애플은 글꼴 시스템을 개발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인쇄 엔진을 담당하기로 합의했다. 1991년 5월 매킨토시 시스템 7(System 7)의 출시와 함께 트루타입은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왔다. 당시 제공된 글꼴은 타임스 로만(Times Roman), 헬베티카(Helvetica), 쿠리어(Courier), 심볼(Symbol) 등이었는데, 이들은 어도비 레이저라이터(LaserWriter)의 포스트스크립트 글꼴을 성공적으로 재현해냈다.


도전의 시기: 1992~199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1992년 4월 윈도우 3.1(Windows 3.1)에 트루타입을 도입했다. 모노타입(Monotype)과의 협력으로 타임스 뉴 로만(Times New Roman), 에리얼(Arial), 쿠리어 뉴(Courier New) 등 핵심 글꼴들을 개발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느린 16비트 286 프로세서 환경에 맞추기 위해 32비트 설계를 16비트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이로 인해 렌더링 오류와 호환성 문제들이 발생했다. 메모리 할당 문제부터 시작해서 대문자 크기에서 시스템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복잡한 글자들이 화면에는 나타나지만 프린터에 출력되지 않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트루타입의 명성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저가의 불량 글꼴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고, 타입 파운드리들조차 트루타입 라이브러리 출시를 포기했다. 마치 새로운 기술이 과대포장되었다는 인식이 업계 전역에 퍼져 있던 시절이었다.


재탄생의 순간: 1995년 이후

1995년 8월 윈도우 95(Windows 95)의 출시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완전히 새로운 32비트 래스터라이저(rasterizer)를 개발했고, 그레이스케일 래스터화 안티앨리어싱(antialiasing)를 도입했다. 이제 화면의 글꼴이 훨씬 부드럽고 깔끔하게 표현되었다. 트루타입은 이제야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낼 수 있었다. 동시에 애플은 트루타입을 확장하여 트루타입 지엑스(TrueType GX)를 개발했다. 사용자가 켜고 끌 수 있는 합자(ligatures), 복잡한 문맥 대체, 글자의 다양한 형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글꼴 변수(font variations)를 지원했다. 1999년에는 애플 고급 타이포그래피(Apple Advanced Typography, AAT)로 더욱 발전했다.


tempImagebTYf00.heic 좌: 비트맵, 우: 안티앨리어싱


통합과 진화: 오픈타입의 등장

199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와 어도비는 함께 오픈타입(OpenType)을 개발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었다. 오픈타입은 트루타입의 이차 베지에 곡선(quadratic Bézier curves)과 어도비 포스트스크립트의 삼차 베지에 곡선(cubic Bézier curves)을 모두 수용했다. 한 가지 글꼴 포맷으로 두 가지 상이한 기술을 통합한 것이다. 오픈타입은 단일 파일에 65,536개 이상의 글리프(glyph)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동아시아 문자를 포함한 다국어 지원을 가능하게 했다. 유니코드(Unicode) 기반으로 설계되어 플랫폼 간 호환성을 보장했다.


웹 시대의 발전

2009년부터 웹 오픈 폰트 포맷(Web Open Font Format, WOFF)이 등장했다. 이는 오픈타입과 트루타입 글꼴을 압축하여 웹에서 빠르게 전송할 수 있도록 했다. 2018년에는 더욱 효율적인 압축 알고리즘인 브로틀리(Brotli)를 사용하는 WOFF 2.0이 표준화되었다.


가장 획기적인 발전은 2016년 9월에 일어났다.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애플, 구글이 함께 오픈타입 1.8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변수 글꼴(variable fonts) 기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기술은 애플의 트루타입 지엑스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를 현대화한 것으로, 단일 글꼴 파일에 무한한 가중치, 넓이, 기울기 변형을 담을 수 있게 했다. 10개의 별도 글꼴을 필요로 했던 작업을 이제 하나의 파일로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다양성과 최적화의 시대

2024년부터 2025년 현재, 글꼴 기술은 놀라운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오픈타입은 여전히 표준 글꼴 포맷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변수 글꼴 기술은 모든 주요 브라우저와 디자인 소프트웨어에서 지원되고 있다. 색상 글리프, 수학 공식 레이아웃, 복잡한 스크립트 지원 등 고도의 타이포그래피 기능들이 일상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글 글꼴 환경도 크게 발전했다. 구글의 노토 산스 씨제이케이(Noto Sans CJK), 어도비의 한 산스(Source Han Sans), 나눔 폰트, 디투 코딩(D2Coding) 등 우수한 트루타입 및 오픈타입 글꼴들이 자유롭게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고도의 힌팅(hinting) 기술을 통해 작은 화면에서도 선명한 표시를 보장한다.


트루타입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어도비의 독점에 항거하는 도전자였다. 하지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것은 웹, 모바일, 데스크톱 전역에서 가장 신뢰받는 글꼴 기술으로 진화했다. 1989년 삼포 카아실라가 완성한 그 핵심 엔진은 여전히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글꼴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이것이 바로 트루타입이 가진 진정한 가치이자, 기술 역사 속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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