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로 읽는 디자이너의 진화 1.0
두 손으로 직접 모으던 사진과 잡지 오려붙인 콜라주 같은 아날로그적 아름다움을 디지털 공간으로 옮긴 것. 그것이 핀터레스트의 시작이었다. 2008년 구글에 근무하던 벤 실버만(Ben Silbermann)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해온 수집 습관을 생각했다. 곤충과 우표를 모으던 소년은 이제 그것을 웹상에서 모을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수집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는 신념으로 2008년 동료 폴 시아라(Paul Sciarra)와 이반 샤프(Evan Sharp)와 함께 콜드브류 랩스(Cold Brew Labs)를 설립했다.
초기에 만든 토트(Tote) 앱은 온라인 쇼핑을 종이 카탈로그처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모바일 결제 기술의 미성숙으로 인해 사용자들이 쉽게 구매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모으고 공유하고 싶어 했다. 그 행동 하나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2009년 11월, 세 창업자는 핀(Pin)과 보드(Board) 개념으로 핀터레스트를 구상했고, 2010년 3월 클로즈드 베타(Closed Beta)로 조용히 문을 열었다.
시작은 미미했다. 출시 9개월 후에 겨우 1만 명의 사용자가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벤 실버만은 처음 5,000명의 사용자에게 직접 편지를 썼고, 심지어 자신의 휴대폰 번호까지 남겼다. 이러한 섬세한 관심이 각 사용자의 피드백으로 돌아왔다. 2011년 3월 아이폰(iPhone) 앱이 출시되자 예상을 훨씬 초월한 다운로드가 쏟아졌다. 이미지를 핀으로 꽂고 보드에 정리하는 것. 그렇게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경험이 사람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2015년은 핀터레스트가 판매 기능으로 변모하는 해였다. 쇼핑 가능한 핀(Shoppable Pins) 기능이 추가되면서 단순 영감 플랫폼에서 커머스 채널로 진화했다. 같은 해 광고상품 프로모티드 핀스(Promoted Pins)도 출시되어 브랜드들의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 후 2017년에는 검색 광고(Search Ads) 기능이 추가되며, 광고주들이 보다 정확한 사용자에게 도달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수익화 노력들이 꽃피운 순간이 바로 2019년 4월이었다.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핀터레스트(증권 기호: PINS). 주당 19달러의 공개가 이루어진 그 날, 회사의 가치는 약 120억 달러로 평가됐다. 구글 출신의 창업자가 그토록 소중하게 길러낸 이 플랫폼이 투자자들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상장 후 몇 년간 핀터레스트는 잠시 정체를 겪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틱톡(TikTok)과 인스타그램(Instagram)의 성장에 밀렸던 것이다. 그러나 2024년을 기점으로 핀터레스트는 새로운 르네상스(Renaissance)를 맞이했다. 특히 Z세대가 발견했다. 트렌드를 캐치하고, 패션과 뷰티 감성을 나누고,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공간으로서 핀터레스트는 재조명됐다. 국내에서만 해도 2020년 228만 명의 사용자가 2025년 4월 611만 명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전 세계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5억 7,000만 명에 달하며, 지난 9년간 4배 이상 성장했다.
2022년 빌 레디(Bill Ready)가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하면서 인공지능(AI) 기반의 개인화 전략이 강화되었다. 아마존(Amazon)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모든 핀을 쇼핑 가능하게 만들었고, 구글(Google)과의 협력으로 검색 경험도 개선했다. 2026년 현재, 핀터레스트의 연간 매출은 36억 달러를 넘어섰고, 플랫폼은 순흑자로 돌아섰다.
핀터레스트가 오늘날 사랑받는 이유는 결국 그 창립 철학에 있다. 페이스북(Facebook)이나 트위터(Twitter), 틱톡처럼 사람과의 연결이 아닌, 자신의 꿈과 관심사를 모으고 표현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핀터레스트 앱을 켤 때, 사람들은 78% 확률로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것이 말해주는 것은 핀터레스트가 단순한 소셜 미디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곳은 미래의 나를 그리고, 희망을 수집하고, 영감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조용하고 따뜻한 디지털 보드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