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로 읽는 디자이너의 진화 1.0
1998년, 키그립(KeyGrip)이라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어느 엔지니어가 더 빠른 컴퓨터를 위한 새로운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프로그램은 최종 편집 소프트웨어(Final Cut)로 개명됐다. 하지만 시장에서 구매처를 찾지 못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이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직시했다.
파이널 컷 프로는 전문 영상 편집을 매킨토시 사용자들의 손 안에 가져다주었다. 독립 영화인들과 고급 영상 취미인들은 처음으로 가격이 합리적인 비선형 편집(Non-linear editing) 도구를 갖게 됐다.
2002년, 파이널 컷 프로 4가 출시되며 생태계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콤프레서(Compressor)는 영상 형식 변환을 담당했고, 라이브타입(LiveType)은 고급 텍스트 애니메이션을, 사운드트랙(Soundtrack)은 로열티 프리 음악 생성을 가능하게 했다. 시네마 툴스(Cinema Tools)라는 필름 제작자 전용 애플리케이션도 포함됐다. 이들은 하나의 통합 편집 환경으로 묶여 파이널 컷 스튜디오(Final Cut Studio)라는 거대한 제작 스위트를 이루었다.
2006년, 애플은 전략을 바꿨다. 파이널 컷 프로를 단독 상품으로 팔지 않고 스튜디오 번들에만 포함시켰다. 인텔 프로세서 호환을 위한 유니버셜 바이너리(Universal binary) 버전도 공개됐다. 이제 윈도우 사용자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애플은 맥(Mac) 플랫폼만을 지원했다.
2009년 7월, 파이널 컷 프로 7이 등장했다. 그것은 32비트 애플리케이션이었지만, 13년간 축적된 전문 기능들을 모두 담고 있었다. 영화 제작사와 방송국들이 이를 신뢰했다. 멀티캠 편집(Multi-camera editing), 실시간 이펙트, 정교한 색 보정. 파이널 컷 프로 7은 산업 표준이 되었다. 하지만 급변하는 기술 앞에서 소프트웨어는 점차 무거워지고 복잡해졌다.
2011년 4월 12일, NAB 쇼에서 애플은 완전히 새로운 파이널 컷 프로를 선보였다. 13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만든 소프트웨어였다. 64비트 아키텍처(64-bit architecture)로 빌드된 파이널 컷 프로 X는 혁명이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기술은 매그네틱 타임라인(Magnetic Timeline)이었다. 기존 트랙 기반 편집에서 벗어나, 클립들이 자석처럼 붙었다 떨어지는 방식의 새로운 워크플로우를 제시했다. 편집자는 클립의 위치를 옮길 때 트랙 충돌이나 동기화 문제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인터페이스는 직관적이고 아름다워졌다. 색상 보정은 컬러 보드(Color Board)라는 혁신적인 도구로 재설계됐다.
애플은 2011년 6월 21일 맥 앱 스토어에서 파이널 컷 프로 X를 출시했다. 가격은 299달러였다. 전작 버전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이는 대담한 결정이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찬반이 갈렸다. 많은 편집자들은 변화를 거부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환영했다.
2015년 버전 10.2는 3D 타이틀(3D Titles)을 도입했다. 매그네틱 타임라인 2는 더욱 정교해졌다. 컬러 코렉션(Color Correction) 이펙트는 여러 층으로 쌓을 수 있게 됐다. 2016년 버전 10.3은 인터페이스를 완전히 재설계했다. 키프레이밍(Keyframing)은 부드러워졌고, 모션 그래픽이 더욱 유연해졌다. 옵티컬 플로우(Optical flow)를 활용한 슬로우 모션은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광색 감마 영상(Wide-gamut color)과 REC 2020 색 공간(Color space)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2018년 버전 10.4는 색상 휠(Color wheels)과 색상 곡선(Color curves)을 추가했다. 360도 영상 편집(360° video editing)도 가능해졌다. 고다이나믹레인지(High-dynamic-range, HDR) 영상 작업이 가능했다. 프로레스 로우(ProRes RAW) 포맷이 지원됐다. 이때 애플은 파이널 컷 프로 X의 사용자가 250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그 이후 매년 새로운 기능이 추가됐다. 2019년에는 메탈(Metal) 기반 처리 엔진으로 렌더링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2020년 애플 실리콘(Apple Silicon) 맥에 최적화됐다. 닫힌 자막(Closed captions)이 타임라인에서 직접 만들어질 수 있었다.
2024년 11월 13일, 파이널 컷 프로 11이 공개됐다. 이는 단순한 업데이트가 아니었다.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라는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내장됐다. 가장 획기적인 기능은 매그네틱 마스크(Magnetic Mask)였다. 녹색 배경이 필요 없었다. 마우스 클릭만으로 영상의 특정 인물, 사물, 형태를 자동으로 추출할 수 있었다. 기존에 필요했던 시간 소모적인 로토스코핑(Rotoscoping)은 역사가 됐다.
이미지 플레이그라운드(Image Playground)라는 기능은 사용자의 설명이나 사진 라이브러리의 인물을 바탕으로 스타일화된 이미지를 생성했다. 조정 클립(Adjustment clip)을 타임라인 위에 배치해 여러 클립에 동시에 색 보정과 이펙트를 적용할 수 있었다. 공간 영상(Spatial video) 편집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2025년 3월 버전 11.1은 더욱 진화했다. 애플 로그 2(Apple Log 2)라는 새로운 색 공간과 아이폰에서 촬영한 시네마틱 영상(Cinematic video)에 대한 지원이 강화됐다.
2026년 현재, 파이널 컷 프로는 버전 11.2에 이르렀다. 아이폰에서 촬영한 프로레스 로우 영상의 노출, 색온도, 틴트, 디모자이싱 등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 새로운 애플 로그 2 LUT(Look-Up Table)를 적용해 원본의 생생한 색감을 복원할 수 있다. 27년 전 가격이 합리적인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로 시작했던 파이널 컷 프로는 이제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이 결합된 미래형 제작 도구가 됐다. 매그네틱 타임라인에서 매그네틱 마스크로, 색상 보정에서 생성형 이미지 창조로. 모든 변화는 편집자의 창의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파이널 컷 프로의 역사는 기술의 진보일 뿐만 아니라, 영상 창작의 민주화를 향한 여정이다. 가격은 낮아지고, 기능은 강력해지고, 학습 곡선은 완만해졌다. 전문가에서 시작한 도구가 이제는 모든 창작자의 손에 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 파이널 컷 프로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계속 변하고, 계속 나아가고, 계속 영상 제작자들의 꿈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