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로 읽는 디자이너의 진화 1.0

툴로 읽는 디자이너의 진화 1.0

by 콜드포인트

에필로그: 네 개의 세대와 시간의 겹겹이

1963년, 팬톤(PANTONE)은 색상의 언어를 정의했다. 그것은 단순한 색표였지만, 모든 디자이너에게 같은 '말'을 쓰게 해준 첫 번째 도구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19년 뒤인 1982년, 오토캐드(AutoCAD)가 나타났다. 종이 위의 손 그림은 컴퓨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984년, 와콤(WACOM) 타블렛이 그 손과 화면을 다시 연결했다.


디자이너의 역사는 곧 도구의 역사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었느냐는 항상 '어떤 도구를 가졌느냐'와 깊게 얽혀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따라간 37개의 도구들은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어떻게 생각했고, 무엇을 꿈꿨으며, 어디로 나아갔는지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첫 번째 세대는 '정의의 시대'였다. 1987년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는 벡터라는 개념을 민주화했다. 1990년의 포토샵(Photoshop)은 사진 시대를 열었다. 1991년의 트루타입 폰트(TrueType Font)는 타이포그래피를 해방했다. 이 시기의 디자이너들은 '이제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해 나갔다. 1993년의 시네마 4D(Cinema 4D)는 '평면이 아니어도 된다'는 깨달음을 가져왔다.


두 번째 세대는 '확장의 시대'였다. 1995년 블렌더(Blender)는 무료로 3D의 문을 열었다. 1996년의 3D 스튜디오 맥스(3D Studio MAX), 후디니(Houdini), 그리고 CSS는 디자인의 영역을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1997년 애프터 이펙츠(After Effects)가 나타났을 때, 디자이너들은 처음으로 '시간'을 다루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디자인하는 경험이 생겨난 것이다. 1998년의 라이노 3D(Rhino 3D), 1999년의 인디자인(Indesign)은 도구의 세분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을 표시했다.


세 번째 세대는 '협력의 시대'였다. 2001년의 프로세싱(Processing)은 코드 기반 시각 사고의 등장을 알렸다. 2002년 터치디자이너(TouchDesigner)는 실시간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열었다. 2004년 다빈치 리졸브(Davinchi Resolve)는 색감 작업을 전문화했다. 2011년 글립스(Glyphs)가 나타났을 때 서체 디자인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고, 2016년 피그마(Figma)는 '디자인이 파일이 아니라 공간이 된다'는 패러다임을 선언했다. 같은 해 노션(Notion)은 '브랜드 언어의 실시간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네 번째 세대는 '생성의 시대'다. 2021년 달리(Dall-e)의 등장은 디자인 자산의 소유 개념을 영구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2026년 현재, 우리는 각 도구의 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2026은 생성형 AI로 색상 재조정을 돕고, 포토샵 2026은 화면 속 하모니를 자동으로 맞춘다. 3D 스튜디오 맥스 2026은 연산 속도를 40% 높였고, 블렌더 5.0은 더 빠른 렌더링을 약속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도구가 더 똑똑해질수록 디자이너의 손은 더 깊이 있어야 한다. 피그마의 생성 AI는 초안을 그려주지만, 의도는 여전히 디자이너의 것이다. 후디니의 노드 시스템은 복잡하지만, 그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표현이 있다. 프로세싱의 코드 한 줄은 포토샵의 클릭 열 번과 다른 질감의 창작이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폭발 시대'를 맞이했다. 예전 디자이너는 '주어진 도구로 최선을 다했다'면, 지금의 디자이너는 '어떤 조합의 도구로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를 매번 결정해야 한다. 오토캐드 2026의 11배 빨라진 파일 속도는 단순한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더 많은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철학의 변화다. 다빈치 리졸브 20의 AI 오디오 어시스턴트는 편의가 아니라, '음향 설계도 디자인이다'라는 인식의 확장이다.


1963년부터 2026년까지, 우리가 손에 들었던 도구들은 단순히 더 빠르거나 더 예쁘게 진화한 것이 아니다. 각각의 도구는 우리 시대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었다. 색상을 '같은 언어'로 쓸 수 있는가 → 벡터 그래픽은 평면을 해방했는가 → 시간은 디자인될 수 있는가 → 코드는 창작도구가 될 수 있는가 → 협력은 설계에 포함될 수 있는가 → AI와 함께 디자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2026년의 디자이너는 더 이상 단 하나의 도구를 마스터하는 장인이 아니다. 대신 우리는 '도구의 생태계'를 읽고, 이해하고, 조화롭게 엮어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벡터를 그리고, 포토샵에서 텍스처를 입히고, 3D 스튜디오 맥스에서 라이팅을 조정하고, 애프터 이펙츠에서 시간을 움직이고, 피그마에서 팀과 호흡을 맞춘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디자이너다. 과거의 장인처럼 한 도구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동시에 40년 이상의 도구 진화 위에 서서, 어떤 조합과 순서로 이들을 사용할 것인지를 직관으로 판단한다. 팬톤이 색상의 언어를 정의했듯이, 우리는 이제 '도구의 조합'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정의할 차례다.


앞으로의 도구들은 더 빨라질 것이고, 더 똑똑해질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을 것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도구는 여전히 손 안에서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 1963년의 팬톤 색표에서 시작된 이 진리는, 2026년의 AI가 가득한 스튜디오에서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디자인의 미래는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를 쥔 손과, 그 손을 움직이는 마음에 있다.



<툴로 읽는 디자이너의 진화 1.0> 책을 읽어보신 후 더 다루었어야 되는 툴들이 있었다거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관심있게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며, 디자이너 영역에서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 제가 관심이 있거나 궁금한 부분을 또 다른 연재를 통해서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콜드포인트를 구독해주시면 더 알찬 내용으로 다시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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