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ldred Jun 30. 2019

처음 본 남자가 난 예쁘지 않다고 했다

"처음에 봤을 때 별로 안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새벽 3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주와 맥주 그리고 다시 소주로, 3차까지 이어진 술자리였다. 실 만큼 마셨는데도 유독 취하지 않은 밤이었다. 오히려 약간 잠이 오려던 참이었는데, 맞은편에 앉은 그가 말 한마디로 나를 사정없이 흔들어 깨웠다. 남자에게 내 첫인상에 대해 물어본 건, 그리고 그 답을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보통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얼굴보다는 키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웃었던 것 같다. 어이없고 당황해서. 겨우 두 번째 만남이었다.   


문제는, 그의 말도 안 되는 돌직구가 순간 나를 흔들었다는 거였다. 성별에 상관없이 몇 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대방은 이런 사람이겠구나,라고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내 예상할 수 있는 시간, 공간적 범위를 모두 벗어난 사람이었다. 그때 알았다. 솔직함이 내게  어필될 수 있을 거란 걸.


그런데 지금은 그의 이름이 규영이었는지, 규형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당시에 써놨던 글 한 귀퉁이에서 오른쪽 얼굴에 옴폭하게 패인 보조개가 있었다는 게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예상했겠지만, 강렬했던 처음과는 달리 흐지부지한 끝을 맞이한 관계였다.


이후로 다른 남자에게서 '어른 같다'라거나 '멋있다'라는 이상한 첫인상 평을 들었지만 그때만큼 충격적이었던 때 -직접적으로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하는 순간-는 없었다. 오죽하면 소설로 썼을까.

작가의 이전글 아무튼, 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