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얼마 전에 쓰다만 글이 있다. 자신의 상처를 마패처럼 휘두르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다시 쓴다.
고백해 버린 상처는 들켜버린 짝사랑만큼이나 편리한 도구다. 마패는 함부로 꺼내면 안 되지만, 한번 꺼내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여준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안고 있는 상처가 딱 그짝이다.
그들은 쉬이 상처를 보이지 않지만, 한번 상처를 보여주고 나면 그게 마치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위세를 떤다. 난 상처받았고 넌 상처받지 않았으니까, 넌 나의 모든 걸 이해해야 한다고 때를 쓴다. 무리한 고집과 말도 안 되는 억지까지도 모두 받아줘야 한다며 그렇게 때를 쓴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어느 순간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마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배려가 아닌 이데올로기로 자리를 잡는 순간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들은 그 이데올로기를 십분 활용한다. 그들의 특징은 그 모든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래서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당연함은 누군가의 희생이고 헌신이다. 하지만 상처를 마패처럼 휘두르는 이들은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난 사회적 약자들이 무조건 착하다는 등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처한 환경이 각박한 만큼 그들은 착하기보다는 더 계산적이고 더 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이 착하지 않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지원을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친절을 당연히 생각하며 타인의 희생과 헌신을 가벼이 여기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도 지속적으로 배려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