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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 만나요

by 그루비

다섯 달쯤 전인가, 성실하게 나오던 매실 님이 수업에 빠지고 그로부터 한 주가, 또 두세 달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을 때, 더 이상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실 님 또래(팔십대 초반)인 살구, 하늘 님은 못 본 지 한참 되었으니. 나는 아직 그 또래의 몸을 가진 적이 없어 수영장에 오기까지의 번거로움, 몸 이곳저곳의 상시적 통증과 불편을 헤아리기 어렵다.


2십여 년 넘게 해온 루틴을 그만 놓을 수밖에 없을 때, 몸이 나으면 돌아와야지 하면서도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걸 예감할 때, 등록을 포기하고 처음으로 수업이 없는 화요일 아침을 맞을 때, 점점 더 까라지는 몸을 느끼며 수영하던 순간이 꿈처럼 아득해질 때를 상상한다. 언젠가 나도 그런 시간을 맞겠지. 어제까지만 해도 늘어진 수영복과 수영모, 낡은 물안경과 수건을 바리바리 싸서, 도보-마을버스 승하차의 고생스러운 노정, 샤워-환복의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수영장에 들어갔지만... 더 이상은 무리. 어쩌면 불현듯, 그럴 여력이 도무지 없다고 느끼는 서글픈 순간이 올 테지.


모퉁이에서 제자리 운동을 하던 매실 님이 눈에 선한데, 그녀의 잔소리가 떠올라 배영할 때 팔을 쭉 뻗거나 ‘턴’할 때 벽을 제대로 딛도록 습관처럼 신경을 쓰는데. 이제 그런 잔소리도 다 지난 일이로군. 그랬는데...


지난 목요일, 오랜만에 매실 님이 나왔다. 매실 님은 우리 반 수업에는 들어오지 않고, 얕은 풀에서 천천히 걸어 다녔다. 매실 님은 그동안 혈액암 치료를 받았노라고, 머루 님이 일러주었다. 수영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매실 님과 마주쳤다. 전보다 다소 야위었지만 생각보다 건강해 보였다. 매실 님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나무아미타불.”


합장하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 농담을 이해하고 씩 웃었다. 뽀글뽀글한 은빛 머리가 있던 자리에 1센티쯤 될까 싶은 짧은 머리카락이 새로 돋아 있었다.


“수업은 같이 안 하시는 거예요?”

“좀 걷다가, 회복되면.”

아아. 그렇구나. 정말로, 다행이에요.

“명절 잘 보내요!”


매실 님은 어느 때보다 쌩쌩한 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나도 모처럼 큰소리로 인사를 전했다.


“네. 명절 잘 보내세요! 다음 주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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