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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발랄한 망고 님

by 그루비

금요일 자유 수영 시간에는 망고 님(40대 중반)을 자주 본다. 그녀와는 중급반 어느 시절을 함께한 적이 있다. 밝고 붙임성 좋고 뽀얀 피부에 건강미 넘치는 망고 님은 그러나 그 시절, 나와 나란히 끝에서 1, 2번을 차지했다. 자세나 속도 뭐 하나 시원치 않고 수시로 헐떡대는 모습에서 진한 동류의식을 느꼈다.


자유형 뺑뺑이를 시작하던 무렵, 남들은 한 바퀴에서 둘, 셋, 네 바퀴로 가뿐히 늘리며 안정적인 수영인의 궤도에 들어서던 시점에, 나는 그 시간이 공포스러워 수영장에 이르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한 바퀴만 돌아도 심장이 터질 듯한데 네 바퀴라니....


모쌤(숏컷에 목소리가 허스키한 여선생님)이 “네 바퀴!”라고 외치면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놓인 듯 아득해졌고, 내 차례가 다가오면 이미 심장이 요동을 쳤으며, 혼신을 다해 본들(어쩌면 혼신을 다한 탓에) 두 바퀴가 한계여서, 쓰디쓴 좌절을 안고 중도에 포기하곤 했다. 혼자라면 몹시 씁쓸했을 터이지만 망고 님이 함께라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나중에 반이 갈리면서 헤어졌고, 어쩌다 만났을 때만 해도 자신은 여전히 뺑뺑이가 힘들다며 (서너 바퀴쯤 겨우 돌게 된) 나를 부러워했건만...


오랜만에 본 망고 님은 거짓말처럼 수영 실력이 쑥 늘어 있었다. 어느 자유 수영 시간, 당근 님과 나는 망고 님 뒤에서 그녀의 접영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젊고 탄탄한 몸으로 힘차게 솟구치는 느낌과는 또 다르게,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은 듯한, 사뿐하고도 우아한 스타일이었다.


“와, 진짜 편안하게 한다.”

“그러게요. 부럽다.”


그 순간, 망고 님은 순수하게 비행에 몰두하던, 매 순간 자기를 뛰어넘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눈부셨다. 무엇보다 매끈하게 균형 잡힌 수영 자세가 훌륭했는데, 알고 보니 그동안 개인 레슨을 받았고 수영 유튜브를 열심히 보았으며 지금은 매일 자유 수영을 하는 중이라고(그렇게까지 진심이었다니...) 망고 님은 어제 본 듯 살가운 얼굴로 다가와 그 절치부심(?)의 과정을 재잘재잘 들려주었다. (그녀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방금 만난 80대나 20대 회원 님 누구와도 막힘없는 수다가 가능하다.)


아아, 그랬구나. 빠르지 않아도 좋으니 그런 자태로 한 바퀴만 돌 수 있다면, 내 접영이 누군가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면 더 바랄 게 없으리... 나는 그녀의 일취월장에 진심 충격을 받았고, 그녀로 인해 유유자적하던 나의 수영, 잔잔하던 안분지족의 호수에 파문이 일었다. 아아, 나는 스스로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너무나 쉽게 안주해 버린 것인가.


그녀는 내 실력이 여전히 그렇고그렇다는 걸 확인하고는, 나도 (자신처럼 열심히만 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설렁설렁 운동량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을 진취적으로 바꾸어야 할까. 별일이 없는 한 앞으로도 꽤 오래 할 텐데, 고만고만한 바퀴수 채우기에서 벗어나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할까.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잘해 본 적 없고 점점 늙어가는 몸이지만, 그 모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이 나는 갈매기를 꿈꾸어야 마땅하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개인 레슨이나 평영/접영 기초반으로 가서 다시 1부터 제대로 배우는 걸 한동안 고민했으나... 으레 그렇듯이, 갈매기의 꿈은 서서히 잊히고 말았다. 지금은 그저, 언제나 그렇듯이, 오리발 신고 자맥질하는 순간을 즐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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