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
하얀 비니의 그녀가 선물해준 클레오 레인의 앨범
그녀는 이 CD를 선물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가수를 너무 좋아하는 데 이 CD를 선물해주면 항상 애인과 헤어졌지만 왠지 나에겐 선물해도 우리가 헤어지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고.
그녀에게 내려진 클레오 레인의 저주는 나에게도 그 마수를 뻗쳐 우린 그만 헤어지고 말았다. 사실 나는 그녀와 만나는 동안 한번도 이 노래들을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가 없었다. 하얀 비니의 그녀와 나는 꽃망울을 틔우지도 못한 채 시들어 버리고 말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어떤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던 때였다. 그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나선 안됐겠지만 실은 나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상처의 시절이었기에...
우리가 헤어지고서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택배로 도착한 노트 한 권.
그 노트는 우리가 만나는 동안 시간 순서대로 우리가 함께 한 순간들을 글로, 시로, 사진으로 기록해 둔 일종의 역사서였다. 씨앗이 땅 속에 자리잡고 겨우내 견뎌 싹이 나 이제 곧 만개하려할 때 내가 무참히 짖밟고 발로 밟아 비벼 죽여버린 그 꽃의 성장기였다. 나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울었다. 그밤. 아마도 내 생애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일 것이다. 클레오 레인의 feelings를 들으며 그녀의 저주가 깨져버리길 빌지 않고 처음부터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나를 저주하며, 나는 울었다.
클레오 레인의 앨범은 우리집 창고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는 가끔 클레오 레인의 feelings를 듣는다.
사랑의 끝이나 이별의식의 완성이란 이런 것이다.
클레오 레인의 앨범이 창고에 있고 나는 울지 않고도 클레오 레인의 feelings를 듣는 것.
비로소 타고 남은 동강조차 없는 순간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