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m story
그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캠퍼스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가고 있었다. 아스팔트는 비에 젖어 더욱 검게 물들어있었고 불켜진 상가의 낡은 간판에 빗방울이 점점이 맺히고 있었다.
막차가 끊기기 전에 버스정류장에 가야 했지만 서두르고 싶진 않았다.
맞아도 젖지 않을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런 비를 맞으며 노란 가로등 빛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쳐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때 저 멀리 어디선가 가늘게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4월이었고,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그리고 첫사랑에 빠져있었다. 아직 벚꽃이 피지도 않았고 산수유 나무도 아직은 겨울처럼 가녀린 가지만 뻗어 있었지만 사랑의 감정은 내 속에 속절없이 피어났다. 물론 첫사랑은 짝사랑이라는 되먹지 못한 룰은 나에게도 역시 적용되고 있었다.
그 아인 머리숱이 지독히도 많았다. 강의실에 오른쪽 45도 각도로 그녀가 보이는 곳에 자리 하고 앉아 그 아이의 옆모습을 지켜보왔다. 책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여도 그 큰 눈매는 얼마나 반짝이는지, 이미 세상은 하얀 벚꽃과 노란 산수유 꽃으로 뒤덮인듯 단번에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허리에 감긴 검은색 가죽 벨트는 왜 그리도 단단해 보이는지.
나는 민주 정부 수립과 학원 자주화를 외치며 매일같이 집회에 나갔고 레퍼토리처럼 전대협 진군가나 임을 위한 행진곡같은 노래들을 목이 터저라 불러댔다. 학교 강의내용 보다는 선배들과 마르크스며 레닌을 논하고 자본론을 읽었다.
그녀는 여전히 가냘픈 허리에 단단한 검은색 가죽 벨트를 하고 지독히도 많은 숱의 머리카락을 달고 있었다. E.H Carr를 한쪽 겨드랑이에 끼우고 가죽가방을 어깨에 메고 새침 하디 새침하도록 나와는 다른 세상 속으로 걸어다녔다. 우리는 학과 동기임에도 한 번도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술자리에 같이 있었던 적도 없다. 나는 매일같이 '창고'라는 허름한 지하 술집에서 소주며 막걸리를 진탕 마시고 막차를 타고 퀭한 눈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나라를 구할 것 같은 열정으로 힘차게 술잔을 부딪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텅 빈 가슴의 애처로운 구애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