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
5월 어느 눈 부시게 햇살 푸른 그녀의 생일날.
나는 팬시점에 들러 효용은 없으나 이쁜 물건들을 구입해 하나하나 개별 포장을 한 뒤 다시 큰 박스에 꼼꼼히 넣어 선물 꾸러미를 준비했다. 귀여운 실내화, 작은 곰인형, 향초 세트 뭐 그런 것들. 그리고 장미 한 다발.
그녀의 집은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그때 처음으로 그런 동네가 있다는 걸 안 것 같다. 집 앞으로 찾아가 잠시 만나 전해주었는데 핸드폰도 없던 시절 어떻게 집 앞에서 만날 약속을 했는지, 집은 어떻게 찾아갔는지, 어떤 말을 건네며 전해주었는지 그런 것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가 어떤 얼굴로 어떤 옷차림으로 선물을 건네 받았으며 내게 어떤 말을 남겼는지조차. 아무튼 허리에 그 단단한 가죽 벨트는 감겨있지 않았다.
나는 그때 영도 동삼동에 살고 있었는데 거의 부산 끝과 끝이었다. 미련스럽게도 택시비 따위는 준비하지 못했다. 신을 것 같지도 않은 실내화를 사지 않았다면 택시를 타고 적어도 중앙동까지는 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걷기 시작했다. 부슬비는 내리고 있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나는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하고 김현식 노래를 계속해서 나지막히 부르며 걸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열흘 정도 학교를 가지 않았다. 지독한 5월 감기를 앓았고 민주 정부니 학원 자주화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최루탄 냄새도 그립지 않고 김현식 노래조차 되내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아주아주 심한 감기로 열흘 내내 앓아누웠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