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어느 날 씀
투르크족 대장장이의 모루를 어깨에 얹어놓은 듯
온 마디마디마다 무게가 느껴지고
쑥과 마늘 냄새가 진동하는 동굴 속 곰 신세처럼 눈이 따갑다.
입안은 신문지를 씹어 먹은 것 처럼 까끌거리고 몸은 연체동물과 영혼을 거래하는 저주에 걸린 것 처럼 흐물흐물거린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는 내 마음과 머리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정립되지 않는 책이 되었다. 머리로 읽고 가슴에 저장하는 식의 책읽기가 되지 않는 이 소설의 끝은 꽤나 씁씁하다.
비유와 상징을 통해 현실을 더 알기 쉽게 도와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이 지닌 실체를 까발리듯, 진실을 꿰뚫는 비유와 사랑에 대한 적나라한 서술은 온통 우리를 발가벗겨 놓는다.
지나간 기억은 처형을 피하기 위해 왕골로 잘 짜여진 바구니에 담아 저 강물 위에 띄워 보내야 그 어떤 것이 아니다.
사랑은 어떤 식으로든 왜곡을 통해 형성되고 또 완성된다.
지나간 사랑을 통해 학습된 나름의 사랑방식과 적절한 상황 대응법 10계명을 새로운 사랑에 저 오래된 잣대로 가져다 될 때의 위험에 대해 우리는 직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무심코 들이 댄 그 잣대가 우리를 얼마나 황폐화 시키는 지, 그리고 얼마나 진실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드는 지에 대해서..
우리는 100일을 하루 앞둔 곰의 핏발 선 눈빛을 닮아야 한다. 당신의 모루 위에 새 연장을 두들기라. 낡고 닳아 빠진, 아직 들려있는 손에 쥔 그 썩은 연장에 미련을 버려라.
난 오늘 아주 뜨거운 눈물을, 나를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흘렸다. 눈물을 통해 거행한 모든 왜곡의 화형식이자 시작의 세레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