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by 차가운와인

<채식주의자> 는 한강 작가가 고통 3부작이라고 명명한 세개의 연작 단편이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의 첫 느낌은 기괴함이었다. 어떤 때는 마치 호러소설같고 또 어떤 때는 불행한 가족사 속 치정극같고 또 어떤 때는 한 개인의 일상화된 부조리가 아래로 아래로 쌓여 결국 바닥에서부터 터져나오는 강렬하면서도 정적인 비극처럼 보였다.

​최근에 읽은 소설들, 이를테면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임경선의 <다 하지 못할 말> 등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심층적인 그 무엇이 이 책 <채식주의자> 에는 있다.

흔히 말하는 고전을 읽은 느낌.
케케묵지 않은 신선한 비유적 표현이나 새로운 지식, 독특한 사유세계를 제외하고 나면 소설에서 대개의 문장들은 이런 것을 꼭 글로 남길 필요가 있나 하는 느낌이 남을 때가 있다. 그 만큼 훌륭한 소설은 드물다. 빨래를 개거나 손톱을 깍는 등의 행위와 소설을 읽는 행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다 읽고 난 뒤 어리둥절한 여운과 까닭을 알 수 없는 흉통이 나로 하여금 자꾸 책 표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요며칠 나는 중세의 수도사처럼 어디를 가든 이 책을 고이 쥐고 다니며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어떤 소설은 이게 자전적 소설인가 싶은 때가 있다. 대개 그런 소설은 개인적으로 훌륭한 소설이라는 의미다.

채식주의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쓰여진 소설이나 나에게는 마치 영혜의 언니인 인혜가 화자가 된 1인칭 전지적 시점처럼 보였다. 소설 속에 '나'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술자는 인혜인 것 같은.

영혜와 인혜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동일인에 가깝다. 영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마치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고 자신이 식물이라고 믿고 종내는 섭식 그 자체를 거부하며 아사해 가는 것이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다르지 않음을, 그 기괴함을 기괴하다 여기지 않고 추체험하고 있음을 느낀다.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이며 동시에 폭력적이기도 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유년 시절의 경험과 인혜와 영혜를 일상의 유지를 위한 수단처럼 여기는 배우자를 둔 것도 똑같다. 다만 인혜는 일상을 계속 유지하도록 이끄는 새끼 새(아들 지우)가 있었다는 것과 유년 시절 아버지의 폭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을 일찍부터 깨우쳤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가정을 유지하는 경제적 수단이 자신의 손에 있었다는 것 등이 결코 경계를 건너 죽음과 합의하는 데에는 다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영혜와의 차별점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거의 전지적 서술자로서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손찌검이 일상화 되어있고 나이 열여덟의 성인이 되기까지 매질을 당했던 영혜. 아홉살 대문간에 서서 영리하다고 소문났던 흰둥이가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목줄로 매달려 동네를 여섯바퀴 도는 동안 입에 흰 거품을 물고 결국은 검붉은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아버지의 섬뜩한 말과 함께.

"...그날 저녁 우리집에선 잔치가 벌어졌어. 시장 골목의 알만한 아저씨들이 다 모였어. 개에 물린 상처가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입을 떠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그릇을 다 먹었어. 들깨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
"온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영혜는 아버지의 폭력성을 견뎌내면서 치를 떨고 증오했으리라. 그 증오는 폭력적으로, 저항적으로 되갚고 견뎌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고, 무의식속에서 응어리를 만들어갔다. 그것이 비루한 일상과 함께 깊이를 더하고 단단함을 더해갔다. 결혼 후의 일상이 그 깊이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평범하고 단란한 일상이었다면, 그리고 그 단단한 증오와 무기력함의 덩어리를 서서히 녹이는 삶의 그 무언가가 존재했다면 영혜도 그런 선택지가 없는 막다른 죽음으로 내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 꿈을 꾸기 전날 아침 난 얼어붙은 고기를 썰고 있었지. 당신은 화를 내며 재촉했어.
제기랄 그렇게 꾸물대고 있을 거야?
알지. 당신이 서두를 때면 나는 정신을 못 차리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허둥대고, 그래서 오히려 일들이 뒤엉키지. 빨리, 더 빨리. 칼을 쥔 손이 바빠서 목덜미가 뜨거워졌어. 갑자기 도마가 앞으로 밀렸어. 손가락을 벤 것, 식칼의 이가 나간 건 그 찰나야.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리자 붉은 핏방울 하나가 빠르게 피어나고 있었어. 둥글게, 더 둥글게. 손가락을 입에 넣자 마음이 편안해졌어. 선홍빛의 색깔과 함께, 이상하게도 그 들큼한 맛이 나를 진정시키는 것 같았어.

두번째로 집은 불고기를 우물거리다가 당신은 입에 든걸 뱉어냈지. 반짝이는 걸 골라 들고 고함을 질렀지.
뭐야, 이건! 칼조각 아냐!
일그러진 얼굴로 날뛰는 당신을 나는 우두커니 바라보았어.
그냥 삼켰으면 어쩔 뻔했어! 죽을 뻔했잖아!
왜 나는 그때 놀라지 않았을까. 오히려 더욱 침착해졌어. 마치 서늘한 손이 내 이마를 짚어준 것 같았어. 문득 썰물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미끄러지듯 밀려나갔어. 식탁이, 당신이, 부엌의 모든 가구들이. 나와, 내가 앉은 의자만 무한한 공간 속에 남은 것 같았어.
다음날 새벽이었어. 헛간 속의 피웅덩이, 거기 비친 얼굴을 처음 본 건."

​영혜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그 덩어리를 인지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자신을 억누르고 말살하려는 그 폭력성에 자신조차도 실은 동조하고 있다는 그 아이러니, 자기자신도 그 폭력의 가담자라는 확신. 그 부조리는 브래지어를 했을 때 후크의 조임이 그 덩어리를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얼린 고기를 썰고 그것을 씹고 삼키는 자기 자신이 그 폭력의 가담자로서, 또다른 가해자임을 인지하는 순간 영혜는 일상으로 연결되는 가늘고 힘없는 끈을 놓고 경계를 넘어버렸다. 그 덩어리는 육식으로 대변되는 아버지와 남편의 폭력성, 무신경함. 이기적임 등으로 만들어졌지만 거기에 살을 붙인건 자기 자신이었다는 피학적 자각이었다. 고기의 살점과 뽀얀 국물은 위장에서 소화되고 장에서 흡수되지만 죽임을 당한 무수한 생명의 아우성이 자신의 명치에 남아 소화되지 못하고 공포와 고통의 얼굴로 남아 꿈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영혜의 형부이자, 인혜의 남편과의 비디오작업은 영혜가 넘어간 경계밖 세계의 낯설음과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는 계기였다. 그 특별한 행위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 구원받았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푸른 잎사귀와 붉고 노란 꽃잎의 불가해함은 육식으로 대변되는 폭력성의 대척점에 선 것이며 자신 역시 그 폭력성의 방관자라는 죄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깊은 숲속에 위치한 폐쇄정신병동으로 아사 직전에 놓인 영혜를 면회가던 날. 인혜는 인생이라는 바둑판 위에 한수한수 놓았던 바둑돌을 되놓아보며 영혜의 생을, 아니 자신의 생을 복기한다. 그것은 영혜의 그것과 자신의 그것이 별다르지 않다는 확인의 시간이었다. 섭식을 극렬히 거부하며 아사의 세계로 매순간 뿌리를 내리는 영혜의 세계와 끝끝내 놓지 못하고 몇가닥 모빌끈만으로도 생을 이어온 자신의 살풍경함이 결국은 맞닿아있음을 느낀다.

...이것 때문에 출혈이 있있던 거군요. 깨끗이 떼어냈으니 며칠간 출혈이 더 심해졌다가 멎을 겁니다. 난소엔 이상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순간 그녀는 뜻밖의 고통을 느꼈다. 살아야 할 시간이 다시 기한 없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조금도 기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한달 동안 염려했던 큰병의 가능성은 오히려 사소한 번민에 불과했다는 것을...
...

마침내 굉음과 함께 기차가 플랫폼으로
밀려들어오자 그녀는 더듬더듬 철제의자 뒤로 몸을 숨겼다. 그녀 안의 누군가가 자신을 그 단단한 차체 앞으로 내던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

잠깐만 참아
그때 그녀는 기억했다. 그 말을 그녀가 잠결에 무수히 들었다는 것을. 잠결에, 이 순간만 넘기면 얼마간은 괜찮으리란 생각으로 견뎌냈다는 것을. 혼곤한 잠으로 고통을, 치욕마저 지우곤 했다는 것을. 그러고 난 아침식탁에서 무심코 젓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싶어지거나, 찻주전자의 끓는 물을 머리에 붓고 싶어지곤 했다는것을...​

어떤 '주의' 는 개인이나 집단의 신념이나 이념이 모여 하나의 지향점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책 속에는 영혜를 포함한 그 어떤 인물도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채식주의를 채택하고 따르고 자신의 의지를 투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채식주의자는 그저 영혜와 인혜의 삶을 괴롭히던 억압주의, 폭력주의, 이기주의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상징적인 어떤것이다. 가지와 잎사귀들을 붉게 뻗치고 있는 나무들, 초록의 불빛들 사이로 사위어가는 자신과 영혜는 그렇게 앰뷸런스에 실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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