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시작되었다는 독립영화계의 여름 축제,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매년 8월 첫 번째 주말이면 한여름 정동진의 밤하늘을 빛내고 있다. 올해는 시원한 여름을 자랑한다는 강원도의 특색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무더위가 들이닥쳤지만, 덕분에 이번 정동진독립영화제는 그야말로 한여름 그 자체였다.
(좌) 2023 정동진독립영화제 포스터, (우) 지난 정동진독립영화제 사진 (C) Jeongdongjin Independent Film Festival
저녁 늦은 시간까지 밝게 빛나는 한여름 오렌지 태양 아래, 평소라면 조용했을 바다 마을의 작은 학교에 시끌벅적 사람들이 모인다. 주황빛 여름 햇살을 머금은 몽글몽글한 비눗방울이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영화제에서 마련한 눈길을 잡는 부스들 사이를 지나 정동초등학교의 운동장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스크린과 함께 늘어선 좌석들과 이미 도착한 사람들의 돗자리들이 보인다.
모기를 쫓기 위한 쑥불의 향과 연기가 퍼져 오르고, 킹스턴 루디스카의 열정 넘치는 축하공연과 함께 해가 저물었다. 곧이어 사회를 맡은 공민정, 우지현 배우의 등장과 함께 2023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시작된다.
(좌) 2023 개막 사회를 맡은 공민정, 우지현 배우, (우) 2023 상영 시간표 (C) Jeongdongjin Independent Film Festival
금요일에 시작된 영화제는 토요일을 거쳐 일요일까지, 3일간 강릉 정동진의 정동초등학교에서 개최된다. 탁 트인 하늘, 산맥과 바다로 둘러싸인 운동장에서 은은한 달빛 조명을 받으며 스크린에 비친 영화를 감상한다. 해가 진 후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문득문득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여름의 운치를 더한다.
운동장이라는 열린 공간에 있어서일까,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이는 다른 관객의 관람에 방해가 되기보다는 함께 이 순간을, 영화에서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포근함을 전해준다. 그래서 달달하게 썸을 타는 장면에서는 설렘이 가득한 감탄사가, 오싹하게 무서운 장면에서는 겁에 질린 짜증 섞인 비명이, 통쾌함을 가져다주는 장면에서는 뜨거운 박수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되는 영화제는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청춘의 여름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약한 비에는 우비를 입고 운동장에서 그대로 영화 상영이 진행되지만, 시야를 가리는 비가 내리면 영화와 관객 모두 정동초등학교 체육관으로 이사하게 된다. 여름밤, 비 내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영화 관람이라니. 초등학교 때에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흥미진진하고도 평온한,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되지 않겠는가.
(좌) 개막공연에 흥이 오른 관객들, (우) 애니메이션 지원 사업 폐지 반대 연명 참여 서명 부스 (C)Jeongdongjin Independent Film Festival
한여름의 낭만과도 같은 정동진독립영화제의 관람 비용은 무료이다. 감사하게도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 강원문화재단, 강원영상위원회에서 영화제가 매년 독립영화의 매력을 전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하고 있다. 강릉의 특색을 담은 수제 맥주 양조장 버드나무 브루어리, 강릉의 시그니처 커피 하우스 테라로사,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주최하는 강릉씨네마떼끄 등 기업과 협회들의 협찬 또한 영화제가 더욱 많은 관객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후원과 협찬을 해주는 기관과 기업들은 영화제의 부스로도 만나볼 수 있다. 일반적인 후원 협찬 부스는 관객들에게 정보만을 전하는 홍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정동진독립영화제의 부스들은 관객이 적극적으로 영화제와 하나가 될 수 있게 해주고, 영화제를 더욱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차가운 맥주와 테라로사의 시원한 커피 한 잔, 영화제의 매년 다른 매력을 담아낸 굿즈, 영화 덕후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한국영상자료원의 굿즈 이벤트 부스 등 관객들의 흥을 돋워주는 매력이 가득하다.
올해의 영화제가 끝난 지 벌써 약 2주가 다 되어가는 지금, 한여름 밤의 꿈과 같게만 느껴지는 정동진독립영화제. 별빛 아래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영화를 보며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산들산들 부는 밤바람에 여름의 열기를 실어 보내고, 벌레를 쫓는 쑥불의 향과 뭉실뭉실한 비눗방울이 날아오르는 광경은 이제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처럼 기억 속에 남았다. 이 한여름의 낭만을 이대로 떠나보내기는 아쉬우니, 이어서 정동진독립영화제만의 매력과 2023 상영작 후기에 대해 이야기를 더 가지고 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