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독립영화제, 강원도 바다 마을 정동진의 초등학교에서 열리는 이 영화제를 매년 여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무엇이 그들을 매년 강원도까지 찾아오게끔 만드는 걸까. 정동진독립영화제에는 어떤 매력이 녹아있을까?
지난 영화제 후기를 찾아보기만 해도 보이는 특징들이 있기는 하다. 강원도 바다 마을 학교에서 열리는 영화제. 학교 운동장에 거대하게 펼쳐진 하얀 스크린과 그 앞에 가득 놓인 관객석, 자유로운 돗자리들의 향연. 여름의 해가 뉘엿뉘엿 밤의 장막 뒤로 사라질 때쯤 시작되는 영화제는 풀벌레 소리와 모기를 쫓는 쑥불의 향기로 가득하다. 이세계의 ‘낭만젊음사랑’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그곳은 상상만으로도 여름의 낭만에 젖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낭만적인 여름에 대한 환상만으로 방문한 영화제는 생각보다 알찬 구성과 탄탄한 운영을 보이고 있었다.
# 감독과 배우와 함께, 관객과 함께하는 GV
2023 정동진독립영화제 GV에 깜짝 공연을 준비해 온 배우들 (C) Jeongdongjin Independent Film Festival
영화의 상영이 끝나고 나면, 상영작의 감독과 배우를 포함한 제작진과 함께하는 GV가 시작된다. 상영시간, 관객들은 이미 영화에 물들었기에 너도나도 영화에 대한 감상과 질문을 제작진에게 전하고 물어온다.
여기까지는 어느 영화제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GV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 정동진독립영화제의 관객들은 여느 영화제와는 다른 환경에서 영화를 감상했다. 넓게 트인 밤하늘 아래, 쏟아져 내리는 달빛을 받으며 모든 관객이 함께 운동장에서 영화를 감상했다.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탁 트인 공간 속,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관객들은 다른 관객들과 영화에서 느끼는 감정을 자유롭게 공유하며 영화제를 즐긴다.
이는 같은 공간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보는 제작진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관객들의 생생한 반응은 제작진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관객들이 영화의 주인공과 함께 흘리는 눈물이, 함께 터트리는 분통이,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짓는 따스한 미소가, 통쾌함에 보내는 시원한 박수가 제작진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한 가지 또 다른 매력은, 초등학교에서 진행되는 영화제여서 그럴까, 정동진독립영화제의 GV는 유독 학창 시절 발표회같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감독과 배우, 제작진이 머나먼 다른 세계의 존재가 아닌, 친근하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만 같이 느껴진다. 캠프파이어 같은 느낌이 나는 쑥불 향이 가득한 여름밤의 운동장에서 배우들이 준비한 노래 공연을 봐서 더욱 그런 걸까, 혹은 감독들이 영화를 준비하고 제작하며 느꼈던 감정을 담은 말들을 전해줘서 그런 걸까.
# ‘땡그랑’ 소리에 응원을 담아, 땡그랑 동전상
(좌) 땡그랑동전상 투표함 (우) 2023년 첫째 날의 땡그랑동전상을 수상한 <수능을 치려면> (C) Jeongdongjin Independent Film Festival
정동진독립영화제에는 나름 유서 깊은 특별상이 있다. 바로 영화제 동안 상영작을 관람한 관객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땡그랑 동전상’이다. 관객들은 가장 마음에 든, 가장 응원하고픈 작품에 직접 소중한 응원을 보낼 수 있다. 영화제 부스에 마련된 땡그랑 동전상 투표 장소에 가서, 동전으로 투표를 하면 된다.
‘땡그랑 동전상’의 시작은 철제 양동이에 동전을 넣어야 하는 투표였다. 그래서 철제 양동이에 떨어지는 소리에 맞게 상의 이름은 ‘땡그랑 동전상’이 되었다. 투표에 쓰이는 동전은 금액과 관계없이 동전 한 개에 한 표가 되며, 투표할 수 있는 동전의 개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영화제의 하루가 끝나면 사무국 운영진은 동전의 개수를 세어 그날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영화에 상을 시상한다. 상금은 투표를 받은 금액만큼 그대로 영화 제작진에 전달된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무료로 입장 가능한 영화제이다. 그러니 투표에 쓰인 동전들은 말 그대로 제작진에게 있어 소중한 응원이 된다.
# 별밤우체국: 1년 뒤, 혹은 바로 받을 수 있는 편지
중앙 (C) Jeongdongjin Independent Film Festival / 좌, 우 직접촬영
여행에서 절대 빼먹지 않는 취미 중 하나는 집으로 편지를 보내는 일이다. 여행에서의 감정과 생각을 엽서에 담아 나에게 보낸다. 여행지에서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여행은 우리의 삶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낯선 경험들 속에서 많은 감정과 생각이 오간다. 이를 붙잡아 기억하려면 편지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는 그런 편지를 보낼 수 있는 ‘별밤우체국’을 운영한다. 영화제에서 엽서와 우표를 사서 편지를 쓴 후, 영화제 직후 혹은 1년 후 발송을 선택하여 편지를 보낼 수 있다. 영화제를 두 번 이상 방문할 예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1년 후 발송을 선택해 내년의 영화제를 다녀온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아도 좋지 않을까?
# 지구를 생각하는 영화제
(C) Jeongdongjin Independent Film Festival
영화제 사무국의 노력이 느껴졌던 점은 지구를 생각하는 영화제의 모습이었다. 어느 축제이건 늘 막대한 양의 쓰레기는 문제가 된다. 아름답고 밝게 빛났던 모습 뒤 남겨진 그것들은 아름다웠던 기억을 해치고는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워지는 여름 날씨에서 환경오염은 이제 눈 가린다고 아웅 할 수 없는 문제가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지구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노력이 빛났다. 영화제 부스 중 커피와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강릉의 테라로사 커피 로스터리와 버드나무 수제 맥주 브루어리에서는 정해진 다회용 컵을 이용했다. 이는 재활용이 가능한 컵으로, 이용객들은 시원한 커피와 차가운 맥주를 즐긴 후 퇴장 시 컵을 반납하기만 하면 됐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사용이 난무한 현대에서 이 같은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
영화제에서는 환경 관련 설문조사 또한 진행되었다. 과연 환경과 함께하는 영화제로 잘 운영되고 있는지, 참석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것이다. ‘저희가 환경을 위해 이처럼 노력하고 있기는 한데, 저희 잘하고 있는 걸까요?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라고 묻는 느낌의 설문조사는 마치 학교 후배가 과제를 보여주며 이게 옳은 방향이 맞는지 물어보는 기분이 들어 응원과 애정의 눈빛으로 영화제를 바라보게끔 했다.
한낮의 정동진 바다에서는 비치 콤빙(beach combing) 또한 진행되었다. 바닷가의 쓰레기를 빗질하듯이 빗어 줍는다는 이 활동은 ‘생태전환마을 내일’과 함께 올해 처음 시작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환경과 함께 하고자 하는 영화제가 내년에는 어떤 준비를 통해 지구와 관객과 함께 할 수 있는 영화제를 준비해 올지, 벌써 기대된다.
# 모두와 함께하는 영화제
(좌) 영화 GV 시간 화면 상단에 등장하는 한글자막과 우측의 수어 통역 화면 (우) 수어 통역 화면 / 직접 촬영
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관객석에 앉아 개막 공연을 즐기고 있을 때, 공연 못지않게 관객들의 눈길을 끈 것은 수어 통역이었다. 새하얀 스크린 옆으로 마련된 또 다른 작은 스크린에서는 수어 통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공연 소리에 맞춰 함께 춤을 추고, 피아노 소리에 맞춰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트럼펫 소리에 맞춰 트럼펫을 연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가사가 나오면 가사에 맞는 수어 통역을 진행해 줬다. 밝게 웃으며 함께 영화제를 즐기고 있던 통역사분의 미소가 이 영화제가 모두와 함께하고자 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 상영이 시작되고는 수어 통역의 화면이 꺼졌다. 그 대신 상영작 스크린의 하단에 한글 자막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외의 GV 등 시간에는 수어를 모를 수도 있는 이들을 위해 실시간으로 자막을 제작해 화면 상단에 달아주었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많은 부분에서, 많은 이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낭만으로만 가득했다면, 한 번이면 됐다며 만족하고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의 영화제를 함께 한 이들과 함께 ‘우리 내년에도 또 오자’라고 약속을 잡게 되는 것은 정동진독립영화제의 이런 탄탄한 운영과 그만의 특색 덕분이 아닐까. 그런 점이 바로 영화제의 관객들을 매년 그곳으로 돌아오게끔 하는 게 아닐까.
정동진독립영화제 후기의 마지막 글로는 2023 상영작 후기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