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인 선생님이 내시경실을 들려서 과자와 젤리를 주고 떠났다. 몸을 많이 쓰는 일이기에, 우리 모두는 당이 부족하므로 과자와 카페인은 고마운 선물이다. 일과가 시작하기 전이고 회복실엔 환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회복실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젤리를 나눠 먹었다. 나도 모르게 맛있다를 연발하며 신나게 먹고 있는 나를 보며 선생님이 말을 건넸다.
[우리, oo 이는 정말 긍정적인 거 같아. 젤리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하고 밝게 웃잖아.]
병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난 '음 맛있다'를 연발하며 기분 좋게 먹는 편인데 이런 나를 두고 한마디씩 건네기도 한다.
[아니, oo 선생님은 우리 식당 밥이 그렇게 맛있어요? 매번 신나게 드시는 거 같아서요.]
사실 맛이 없을 때도 있고 기호에 맞지 않은 음식이 나올 때도 있지만 누구보다 맛있게 식사 시간을 즐긴다. 맛있어서 먹는 것도 있지만 그 시간 자체를 즐기고 있다. 음식 자체의 맛도 나쁘지 않고, 음식 본연의 맛을 음미한다기보단 점심시간의 여유를 감사하며 식사시간을 즐긴다. 그리고 국물에 김치만 있어도 밥을 먹는 데엔 지장이 없고 메인 반찬에 고기가 나오면 더 신나게 먹을 수 있다. 점심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몫이지만 그 맛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조금은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서 긍정적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다면 그 순간은 행복해진다. 행복이 삶의 기준은 아니지만 식사시간만큼은 즐겁게 보내니, 하루에 최소 두 번은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와이프가 저녁을 준비 한 날엔 한층 더 호들갑을 떨면서 먹는다.
[갱, 진짜 인도에서 카레 비법 전수받아 왔어? 왜 이리 맛있어? 나 지금 인도 갠지스강이 눈에 보이는데? 그리고 이 떡갈비 쫀득함이 장난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겉바 속촉으로 구울 수 있어?]
시판되는 카레에다가 냉동 떡갈비라는 것은 나도 알고 와이프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야채를 넣어서 끓이고 기름을 튀겨가며 구워서 나를 위해 차려준 저녁의 소중함을 알기에 아내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와이프도 내가 매번 오버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난 멈추지 않는다. 예전에 아무 말 없이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단다. 매번 호들갑 떨고 유난을 떨다가 조용히 밥만 먹으니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지치고 피곤해서 그날의 에너지가 소진되었다고 해서 마냥 입을 닫을 순 없다. 내가 하는 리액션과 반응이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주며 그날의 기쁨이 되기에 무미건조하게 먹을 순 없는 노릇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이러한 내 반응이 나 스스로와 상대에게 조금의 위안과 즐거움이 된다면 시원하게 주접 한번 떠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오늘도 세척실 여사님께서 샌드위치를 싸와서 내시경실 식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리고 난 우리를 위해 샌드위치를 준비해 준 여사님께 답변을 해드린다.
[와, 진짜. 이 많은 양을 아침 일찍 준비했다니 정말 리스펙트입니다. 그리고 감자 계란 샌드위치 중간에 소스를 발라선지 간도 딱이고 너무 좋습니다. 어쩐지 이게 입에 술술 들어가더라고요. 오늘 아침은 정말 힘낼 수 있겠는데요? 제가 먹은 것도 있고 하니 오늘은 꼭 정시에 끝내서 세척실에 여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오늘은 보통 때 보다 1시간 늦게 마쳤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여사님은 싱글벙글이다. 나 또한 오늘 하루 싱글벙글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