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실수가 잦은 편이다. 사실 노래 가사도 내 맘대로 부를 때가 많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면 내가 생각한 대로 이야기해버린다. 아내는 그런 실수를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교정(?)을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핑크 공룡 쿠쿠'라는 동요가 있다. 튤립 모양의 노래 재생기에서 나오는 노래인데 매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된다. 핑크색 공룡에 이름이 쿠쿠 라는 조합은 내 머리로는 쉽게 와닿지 않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그 노래를 마음대로 흥얼거린다.
[리틀 공룡 투투. 리틀 공룡~ 리틀 공룡 푸푸. 리틀 공룡~]
내 머릿속에선 핑크색 공룡보단 어린 공룡인 리틀 공룡이 더 알맞다고 생각하나 보다. 핑크색 공룡은 상상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걸 상상치 못하고 가능한 범주인 리틀 공룡을 찾아낸 것 같다. 그리고 공룡의 이름을 투투나 푸푸라고 하는 것은 순전히 쿠쿠 보다 더 귀엽기 때문이다.
이건 아들이 타고 노는 장난감인 '어라운드 위고'라는 제품이다. 바퀴가 달려 있어서 주변을 뱅글뱅글 돌 수 있는 장난감이다. 위고라는 이름은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지만 그 앞에 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여보. 저기 위고 좀 가져다죠.]
[응? 위고? 빅토르 위고? ]
나도 모르게 위고란 말에 알고 있는 다른 위고를 대답해 버렸다. 아내는 빵 터지고 어라운드 위고는 어디 가고 이상한 단어를 대냐며 놀렸다. 난 레미제라블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가 떠올랐고 아내는 당연히 어라운드 위고를 떠올렸던 것이다. 이런 잦은 실수와 대화에서 드러나는 실수의 원인은 무엇일까?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식의 마인드 때문일 수 있겠지만 이번 주말에 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과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묻히셨던 그곳을 정비하여 이전 한뒤 뵙는 초행 길이었다. 기존에 있던 묘지에서 유골을 화장해서 가족묘를 마련하여 안치했으며 아버지의 이름을 비롯한 박 씨 집안의 이름이 묘지에 새겨져 있었다. 아버지가 뿌듯해하며 이야기를 건넸다.
[여기에 우리 가족이 묻힐 자리를 미리 만들어 놨고, 내도 그렇고 너도 여기에 묻히는 거다. 그, '사골'을 오동나무에 다가 묻어가지고...]
[예? 사골요? 유골 아니고요?]
우리 가족 모두는 빵 터져버렸다. 유골을 사골이라니. 아버지는 그게 그거 아니냐며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사골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내가 하는 말실수는 이렇게 가족 대대로 내려온 것이었구나. 가족묘에 갔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행동은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었다. 사골이 아닌 유골로 안치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하셨을 말실수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