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친구

by 돌돌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중학교 시절부터 알던 친구들이니까 이십 년은 넘게 알고 지낸 친구들이다. 한 친구는 서해안의 한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고 다른 친구는 고향인 부산에서 살고 있다. 부산에 있더라도 자주 보진 못하며 둘 다 애 아빠기 때문에 얼굴 볼 시간은 더더욱 없다. 한 번씩 친구가 부산에 내려오면 시간을 내서 함께 볼 수 있었는데 코로나 시국 때문에 9시 전엔 헤어져야 한다. 이 친구들은 1년 만에 보더라도 어색하지가 않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고 동일한 주제로 대화를 해도 지겹지 않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학창 시절과 20대의 풋풋한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고 울고 웃으며 함께한 친구들은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서로에 대해서 비난을 하고 거친 말을 해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오랜 친구이기에 가능한 것이며 당시에 당사자가 가장 부끄러워했던 실수들을 굳이 끄집어 내어 웃음거리로 삼는다. 어렸을 때 보다 더 비싸고 좋은 식당을 간다는 것 말고는 우린 변함이 없다. 물론, 나이가 들었고 처한 환경도 바뀌었으며 매 순간 붙어 다니던 그때랑은 다르게 가장이자 아빠가 됐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도 직장에 매여서 며칠 만에 연락이 올 때도 있지만 크게 서운해하지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며 연락을 하지 않더라도 친구는 변하지 않는다. 생각은 당사자 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아프고 거친 순간도 있었겠지만 10대, 20대 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만큼 걱정을 하며 살진 않았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장미 빛이었고 뭐든지 다 이룰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었다. 세상이 어렵고 막막해 보여도 지금과 같이 눈앞에 벽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노력이 주는 성장과 인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부동산, 코인, 주식으로 한탕 벌 생각뿐이다. 친구들과 함께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지만 우리는 속도를 따라잡기 버겁다. 난 현실에 안주해 버리고 도태된 어른이 된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 정도는 아니지만 '옛날엔 진짜'를 이야기하는 아재가 됐다. 과거는 아름다운 것이고 끊임없이 미화가 된다.


미화가 될지언정 그 당시의 우리의 모습은 아름답다. 치기 어리고 철이 없었으며 이성에 매달리고 눈물을 흘리던 친구의 모습은 나만 알고 있다. 100킬로가 넘고 키도 크고 인상도 세서 남들이 보기엔 위압감을 느끼는 친구도 여린 마음을 가진 소년이었다. 좋아하던 여자애가 서빙을 하던 술집을 출근하다시피 같이 갔지만 친구는 말 한마디 붙이지 못했고 남자친구가 있다는 소식에 발걸음을 끊었다. 그 친구는 어느덧 애 아빠가 됐으며 아내에게 매일 구박받으며 살고 있다. 인생은 한 탕이라던 친구는 여전히 주식과 코인판을 뒤적이며 살고 있으며 사업과 창업을 부르짖던 나는 간호사로 병원의 한 부속품이 되었다. 간호사를 하면서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트래블 널스를 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책을 써서 먹고 살 거라는 포부도 있었다. 결혼과 아이는 내 인생에 예정이 없었지만 이들은 내 삶을 풍요롭게 채우고 있다. 삶은 어떻게든 돌아가고 그 끝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친구들을 만나서 새해를 웃음으로 시작했다. 내 근심과 걱정을 잊을 수 있게 만드는 친구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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