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날엔 평소보다 언어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괜히 농담으로 넘기려다가 꼬투리를 잡혀 수렁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품 백을 사줘도 편하게 들고 다니기 어렵지 않아?]
[무슨 소리야? 명품 백을 사주고 그런 이야기를 해. 내가 얼마나 잘 들고 다닐지 상상해 봤어?]
내가 이야기하고도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면 편하게 들고 다니기는 장바구니만 한 게 없지만 그녀는 가방을 원하고 있다. 그것도 명품으로. 그녀에게 명품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봤자 공격의 실마리만 준 것이다. 사실 아내에게 제대로 된 명품 백을 선물해 준 적은 없다. 현금을 준 적은 있지만, 아내는 명품 백을 사지 않았고 아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며칠 전에 아내에게 캉골 가방을 사줬다. 이 브랜드의 가방이 이쁘고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사줬는데 아내는 기쁨반 자조반으로 이야기한다.
[나 캉골가방 선물 받은 거, 단톡방 언니들한테 다 말할 거야. oo 언니는 샤넬 백 받았는데 난 캉골이라고.]
아내는 말은 이렇게 해도 내가 사준 캉골 가방을 잘 들고 다닌다. 내심 이쁘다며 가방을 사준 날엔 가방을 들고 거울에 서보기도 했다. 아내의 이런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아도, 우리 집이 다른 집들보다 풍부한 것이 있다. 바로 사운드가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아내와 나는 말이 많다. 서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줄을 서기도 한다. 놀랍게도 아들은 이런 우리보다 말이 더 많다. 한 번씩 아들의 쉼 없는 대화에 지치기도 할 정도다. 엄마와 아빠가 말이 많으니 아들이 말이 많은 것은 당연하단다. 집엔 비록 명품 백은 없어도 우리 집은 서로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침묵은 허용되지 않는다. 아들은 티라노를 외친다. 그리고 '아빠 시우방에 빨리 가자'라며 나를 끌고 다닌다. 그리고 아내는 시우가 아침에 일어나서 얼마나 귀여웠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다. 나도 직장에서 있었던 어이없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명품 가방은 없어도 서로의 목소리가 가득한 우리 집이 좋다. 이런 가족과 함께 한다는 기쁨은 누려본 자만이 알 거다.
P.S
올해 아내의 생일날에 명품 백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아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즐겁다. 자 힘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