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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여기 처음 올 때만 해도 진짜 멀쩡했어요.

by 돌돌이

[선생님, 여기 처음 올 때만 해도 진짜 멀쩡했어요.]


회식을 하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나에게 한말이다. 칭찬인지 그냥 이야기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회식의 주제는 처음 이병원에 왔을 때의 내 모습이 되어버렸다.

[제가 여기 와서 15kg가 쪘고요, 나이도 먹었고, 험한 일도(?)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진짜로, 예전엔 날씬했어요.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을 때 보면 어깨랑 팔에 근육도 있고 복근도 있었고요.]

[지금은 완전 훅 갔다는 소리죠? 사람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선생님들도 관리하셔야 합니다. 저를 거울삼아서요.]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그때에 비해 지금의 내 모습이 싫진 않다. 6년 차 경력직 간호사로 입사해서 내가 일한 시간만큼 내시경실에서 일을 했다. 그 사이에 결혼을 했고 아들이 태어났다. 내시경실에서 할 수 있는 검사와 시술은 다 할 수 있게 되었고 가정과 직장에서 내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사실, 날씬하고 건강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은 필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 6년 전에 비해서 먹는 양도 늘고 외식도 잦아졌다. 매일 헬스를 하며 관리를 해왔지만 지금은 주 3일은 아이키도라는 합기도를 하는 것이 전부이다. 헬스나 여타 다른 유산소 운동과는 다르게 자세를 바르게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땀을 흘리는 일은 적다. 나이가 들면서 몸에 무리가 가는 운동은 자제하게 된다.

폰을 바꾸면서 예전 사진들과 지금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차이가 있었다. 살이 찌고 나이가 들었지만 그때랑 다르게 웃는 모습이 많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30대 초반에는 셀카엔 무표정한 사진이 많았다. 요즘 찍은 사진들은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들과 아들의 사진이 대부분이지만, 내가 나온 사진들을 보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진 않다. 셀카로 가득한 멀쩡하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지만, 혼자가 아닌 아내와 아들의 사진으로 사진첩을 채워가고 있다.


폼잡던 30대 초반


살이 찌고 과거랑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종종 시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그래도 난 살을 빼면 예전의 멋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고 내시경실 간호사로 존중해 주는 동료들이 있는데 굳이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살을 뺄 생각은 없다. 체력적으로 힘이 부칠 때면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은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나은 외모는 상대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만큼 외모는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태도를 중히 여긴다면 외모를 가꾸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대신, 내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 깔끔하게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린다. 식단을 조절하거나 체형을 유지하진 않지만 바른 자세로 앉아 있으려고 노력한다. 나를 지탱해 주는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직장에서도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공부를 하고 알려 주기도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이다.



P.S

외모를 가꾸고 몸매를 관리하는 것은 내가 하지 못하는 거대한 노력의 결과다. 나는 그 에너지를 가족과 직장에서 쓰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가족과 함께 주말마다 예쁜 카페에 가서 맛있는 빵과 커피를 먹고 학회에 참석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말해도 정신 승리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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