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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국 Oct 10. 2023

이제 이 자리는 흰수염고래 자리야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그림을 하나 구입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액자를 구매한 것이다. 비록 메이드인차이나가 포장지에 붙어 있었지만 그것이 내가 받은 감동을 갉아먹진 않았다. 그림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림 속의 고래는 아마도 흰긴수염고래 같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생물이자 지금도 생존해 있는 종. 그것을 마주하는 남자. 멀리서 보면 아이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손을 대고 서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을 보면서 아들을 안고 고래를 바라보는 나 자신을 봤던 걸까? 난 처음 보자마자 이 그림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흰긴수염고래가 좋다. 세상을 유유히 헤엄치며 삶을 살아가는 고래. 세상에서 가장 크지만 가장 작은 플랑크톤을 먹고사는 너. 심장 무게만 1톤에다가, 몸길이 33미터, 무게 150톤. 지구에서 가장 큰 너. YB의 흰수염고래라는 곡도 좋아한다. 가사가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이 그림도 흰수염고래가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꿈 꾸는 소년의 모습을 담은 듯하다. 고래를 보고 있는 사람이 몇 살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흰수염고래를 바라본다. 나이를 먹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아들을 품에 안고 흰수염고래를 쳐다보는 나를 투사해 본다.


이전 그림에도 고래는 있다.


 전에 걸려있던 그림도 고래가 있었다.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 독단으로 구매해서 걸어 놓은 건데, 아들보다 내가 더 자주 보는 그림이었다. 조명 때문에 빛이 반사되어서 위치가 아쉽긴 했었다. 고래 그림을 구매한 덕분에 아들의 놀이방으로 이전 그림을 옮길 수 있었다. 난 고래가 좋다. 예전부터 밤하늘, 별, 은하수, 그곳을 헤엄치는 고래를 올려다보는 소년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가지고 싶었다. 이제는 AI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시대이기에, 내가 바라는 그림을 당장 얻을 수 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라, 나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을 주는 그림을 보고 싶다. 솔직히 피카소나 고흐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봐도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삶과 전기를 읽어도 공감을 하지 못했고, 수많은 대중들의 호응과 유행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추상화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고래 그림은 그냥 좋다. 이 그림이 어떤 작품의 카피 거나 오마쥬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나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주고 있으니, 세상의 명화가 부럽지 않다.


이제 이자리는 흰수염고래 자리야


YB의 흰수염고래 가사엔 이런 구절이 있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그런 사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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