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것
지각을 하면 풍경이 다르다. 보지 못했던 중학생 무리가 보이고, 버스정류장에는 매번 보던 사람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린다. 15분 차이가 이렇게나 보는 세상을 바꿔 놓는다. 넌 지각을 했다며 놀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새들도 평소에 출근했을 때 보다 더 크게 지저귄다. 늦잠을 잔만큼 몸도 개운하다.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버스를 기다리더라도 지각을 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검사 준비를 하고 커피를 내리고 평소에 루틴을 하기 위해선 시간이 촉박하다. 버스의 차고지가 바뀌고 나서부터 도착시간은 중구난방이었다. 무작정 기다리기엔 늦잠이 만든 15분의 부담이 크다.
결국 택시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카카오택시를 부르고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꾸만 시간을 들여다본다. 병원과 집까지 택시로 10분. 버스로는 넉넉 잡아 20분. 그리고 나에게 남은 시간은 25분. 나는 12년의 의무교육기간 동안 지각 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다. 개근상을 받았으며, 철저히 사회에 순응할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흡수하며 자라 왔다. 의무교육의 총아에게 지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택시가 3분 후에 도착이라는 알람을 보고 맡은 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의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해 본다. 10대 청소년 커플도 보이고 시계를 연신 들여다보는 중년 아저씨도 보인다. 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과, 버스가 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사람들 까지.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있었구나. 출근과 퇴근길에 마주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직장, 학교, 사랑을 찾아 떠나는 우리들.
예전 티브이프로그램에서 유명댄서는 자신의 딸이 학교를 지각하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같이 산책도 하고 함께 돌아다니다가 지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그녀의 자유로운 교육관을 지켜본다. 학교는 사회생활을 가르치는 교육기간이다. 돈을 모으고 대출을 받고 사기꾼들을 분별하는 법이 아닌, 하나의 구성원을 만드는 기관인 것이다. 요즘 학교 분위기는 모르겠다. 라떼는 지각생이 없었다. 같은 반 친구가 결석을 하면 무슨 일이 있어서 걱정을 하곤 했으니까. 아들이 커서 나도 산책을 하고 놀다가 학교를 늦게 가겠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학교를 가는 건 약속 같은 거야.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 아빠가 시우 과자를 마음대로 뺏어먹어도 될까? 시우 거라는 걸 아빠도 알고, 시우도 아니까 손대지 않는 거야. 우리는 서로 약속을 지키고 양보하고 사는 거니까. 물론, 시우걸 누군가가 뺏으려 들면 싸워도 되는 거야.]
P.S - 아내는 과자를 친구들과 나눠먹으라고 한다. 아내에게 결국 등싸대기를 한 대 맞고 나서, 싸우는 것보단 너의 몫을 뺏기지 않아야 한다고 정정해 줬다. 그 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 아내에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쟁취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씨알도 안 먹히네.